북한이 부산 아시안게임 개회식과 폐막식에서 남북한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앞세워 동시 입장할 것을 요구해 정부가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정부가 크게 고민할 일이 아니다. 대회 개최국으로서 태극기를 포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 그리고 건국이념과 가치를 상징하는 존재다. 남북화해라는 명분만 앞세우면 언제 어디서나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그런 장식물이 아닌 것이다.

2년 전 시드니 올림픽 때 남북한이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동시 입장한 전례가 있지만, 이번은 대한민국이 주최국이라는 점에서 경우가 다르다. 이번 대회가 남북한 화해에 기여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이 전체 아시아인들의 스포츠 제전(祭典) 개최국이라는 국민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대회의 하이라이트인 개·폐회식에서 주최국의 국기가 사라질 수는 없는 것이다.

태극기와 인공기(人共旗) 대신 한반도기를 사용하자는 북한의 주장이 이번 아시안게임을 그들 방식의 ‘민족 대단결’을 고취하는 장(場)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아닌지도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북한의 주장은 또한 이번 대회에서 인공기의 사용범위를 확대하려는 협상전술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반도기를 포기하는 대신 응원석이나 경기장 바깥에서까지 인공기를 사용하겠다거나 다른 추가 요구를 들고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현정부는 대회 개최국으로서의 당당한 자세를 취하면서 북한의 무리한 요구는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민족화해’만 내세우면 윈칙도 체통도, 국가 정체성마저도 포기해버릴 듯한 현정부의 모습은 대다수 국민들 눈에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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