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주민 순종식씨 일행 21명의 해상 탈북은 거스를 수 없는 분명한 흐름 하나를 보여주고 있다. 북한주민들이 본격적으로 북한체제를 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해상탈북을 주도한 순종식씨의 장남 룡범씨는 지난 2000년 12월 중국에서 만난 남쪽 친지에게 “더이상 희망이 없는 북녘보다는 자식들이라도 자유로운 땅에서 교육받게 하고 싶다”고 절규했다고 한다.

용범씨처럼 최근 탈북한 사람들은 ‘배고픔’ 뿐만 아니라 ‘더이상 희망도 없고 미래도 기대할 수 없게된 북한체제’를 진정한 탈북 이유로 꼽고 있는 것이다.

북한체제에서 더이상 미래를 찾을 수 없게된 이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북한을 떠나고 있다. 중국으로 도망친 후 외교공관을 이용해 망명을 요청하거나, 몽골과 동남아국가등을 이용해 한국으로 오기도 하고, 급기야는 배를 타고 서해바다로 탈출하는 북한판 ‘보트피플’ 등장의 움직임마저 보이기에 이르렀다.

중요한 것은 이같은 탈북 러시가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북한의 식량·경제 사정이 좀 나아진다고 탈북현상이 수그러들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 까닭은, 탈북의 진정한 이유가 북한정권과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절망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 탈북사태는 외견상 견고해보이는 북한체제가 사실은 그 내부에서 서서히 허물어져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남쪽 정부는 더이상 탈북자 문제를 ‘강 건너 불 보듯’ 관망할 것이 아니라, 대북정책에 있어 최우선적인 본질 사항으로 인식해야 한다.

막으려 해도 목숨을 걸고 들어오는 탈북자들의 움직임도 그렇고, 주민들마저 버려버린 북한체제의 문제까지, 우리 대북정책의 기본전제와 근간을 뒤흔들 심각한 사안들을 더이상 외면하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탈북자 대책의 출발은 절망한 북한주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빛’을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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