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민족통일대회’가 열리고 있던 지난 15일 오후, 서울 워커힐호텔 무궁화볼룸 앞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친필 편지 전시 여부를 둘러싼 양측의 입장 차이로 사진전 개막이 1시간 이상 지연될 때였다.

어디선가 “왜 말을 못하게 막느냐”는 고성(高聲)이 터져나왔다. 소리를 지른 주인공은 한 50대 남자로, 그의 주위로 사람들이 몰렸다. 곧이어 그를 향해 “통일하자고 모인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하나” “훼방놓지 말고 나가달라”는 질책이 쏟아졌다.

그는 경남 하동군에서 농민 상대의 주간(週刊)신문을 발행하고 있으며 취재차 들렀다고 했다. 마침 사진전을 기다리다 김명철 조선농업근로자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이다.

“서해교전으로 쌀이 1300만 섬이나 남아도는 데도 북한의 굶주리는 동포들에게 줄 수 없게 됐잖아요. 이런 답답한 상황을 풀려면 우리는 굶주리는 동포의 아픔을, 북한은 서해교전 유가족의 아픔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을 뿐인데….”

그는 “남북공동 민간행사에서 그런 얘기도 못한다면 함께 모인 이유가 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를 두둔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자리를 떠나자 대회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이번 8·15민족통일대회는 ‘잡음 없는 진행’이 대회의 제1 목표가 된 듯했다. 서해교전에 대한 언급은 ‘금기사항’인 듯했다. 당연히 그로 인한 쌀지원 문제 등 현안은 거론될 수 없었다. 북측은 불만이 있을 때마다 툭하면 행사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그때마다 행사 진행을 위한 막후 협상이 분주했다.

남북 대표단은 17일 폐막식에서 나란히 “이번 대회의 최대 성과는 만남 그 자체”라고 했다. 정말 꼭 맞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廉康洙기자 ksyou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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