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가톨릭 신학자이자 종교학자인 한스 큉 독일튀빙겐대 명예교수(72)가 20일 오전 한국에 왔다.

한스 큉 교수는 ‘교회란 무엇인가’ ‘그리스도교와 세계종교’ ‘제3천년기를 위한 신학’ ‘문학과 종교’ 등 많은 명저로 유명하며 세계종교인평화회의(WCRP) 공동회장을 맡고 있는 등 종교간 대화와 연합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는 특히 가톨릭 신부이자 생존하는 최고 가톨릭 신학자이면서도 로마 교황청의 보수 성향에 대해 강한 비판을 가함으로써 바티칸과는 불편한 관계이다.

한스 큉 교수는 21일 오전 전북 익산시 원광대학교에서 열리는 국제종교학술회의에서 ‘새 세계질서를 위한 지구촌 윤리’라는 제목으로 기조 연설을 한다. 또 22일 오전 11시에는 서울 수유동 크리스챤 아카데미에서 가톨릭·개신교 신학자들과 오찬 간담회를 갖는다. 이어 오후 4시 서울 명동 서울YWCA회관 대강당에서 ‘세계 종교들·세계평화·세계윤리:21세기를 향한 현실적 비전’이라는 주제로 일반인을 위한 강연회를 갖는다. 82년에 이어 두번째 방한하는 그를 김포공항에서 만났다.

―한국에서의 두 차례 강연을 통해 당신이 전달하고 싶은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무엇인가?

“종교간 평화가 없이는 세계 평화가 있을 수 없고, 종교간 평화는 대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공통의 윤리적 기준과 행동 규범이 없이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인류에게는 보편적인 ‘세계 윤리(Global Ethics)’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이다. 결국 세계 윤리가 없이는 세계가 존재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

―‘세계 윤리’의 중요성에 동의한다고 해도 그것이 왜 종교에서 출발해야 하는가?

“물론 나는 다른 여러 세속적인 요소들에 바탕을 둔 세계 윤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종교는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며 특히 이념이 무너진 후 가장 강력하고 현실적인 힘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비종교인까지 포함하여 여러 종교의 신자들이 다른 종교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공통의 기준을 만들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

―당신은 가톨릭의 저명 인사이면서 왜 그렇게 로마 교황청에 대해 비판적인가?

“가톨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개혁적이고 개방적인 입장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지금의 교황청과 교황은, 말은 굉장히 개혁·진보적으로 하지만 행동은 매우 수구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교황의 권한, 사제의 독신 여부, 산아 제한 등 몇 가지 중요한 문제에 대해 가톨릭 교회가 근본적인 변화를 보여야 할 시점인데도 교황청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

―한국의 종교 상황에 대해 얼마 만큼 알고 있으며 한국 종교계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한국에는 불교, 개신교, 천주교 등 세계의 주요 종교들과 원불교 등 여러 자생적인 종교가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종교간 대화와 평화 없이는 사회 평화가 어려우며, 또 거꾸로 ‘세계 윤리’를 만들어내는 데도 매우 좋은 여건을 갖고 있다.

특히 지적하고 싶은 것은 남한 내부만이 아니라 남·북한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서도 윤리·종교적인 상호 이해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독일 정치가들은 통일을 경제·사회적인 통합만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영토가 하나로 된 이후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은 이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

/이선민기자 sm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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