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김광일기자

인간에게 ‘오해’라는 인식의 왜곡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숱한 문학적 주제와 긴장들은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본다면 커다란 문화적 차이를 보이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려온 동·서양 사이에 너무 어처구니 없는 오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이것은 때로 비극적 결과를 낳기도 했다. 독일에서 가장 주목받는 현대작가 중 한 사람인 한스 크리스토프 부흐(56)를 베를린에 있는 그의 집에서 만났다. 그는 ‘오해’의 문제를 본격 토의하기 위한 ‘2000년 서울 국제문학포럼’ 참석을 몹시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은 에세이 ‘동·서양의 오해’에서 서양이 동양을 오해한 대표 사례로 서독의 저명 작가였던 루이제 린저를 꼽았더군요. ‘그녀는 북한의 독재를 찬양하면서, 실업·무숙자·마피아·부정부패·마약중독 등이 없는 깨끗한 낙원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자유쯤은 포기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제안을 했다’고 당신은 지적했습니다. 린저의 이런 생각은 어디서 비롯된 것입니까.

“역사적으로 볼 때 지식인들이 독재, 혹은 반민주 체제를 찬양한 것은 그녀가 처음은 아니지요. 유럽의 최고 철학자인 플라톤도 시칠리아의 독재자를 찬양했다가 곤욕을 치른 적이 있습니다. 서구 지식인들도 한때 스탈린, 마오쩌둥, 폴포트 등을 찬양했습니다. 린저 같은 저명 작가가 오해를 한 것은 슬픈 일입니다. 당시 린저는 일단의 서유럽 좌파 지식인들의 전형이었습니다. 나는 린저가 나치 정권의 ‘현명한 지도자’ 사상에 무의식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히틀러는 천재적이었고 그를 비판하는 모든 자들 보다 현명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지도자를 신격화하는 동·서양의 전통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

―괴테는 동양 종교가 기독 문화를 침해할 요소가 아니라, 그것을 확장하고 풍부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던 대문호였습니다. 괴테를 본받으면 동·서양의 진정한 상호이해를 가로막는 문화적·전통적·종교적·철학적 장애들이 극복될 수 있겠습니까.

“괴테는 예외적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인들은 아시아를 방문했을 때 두 가지 반응을 보였지요. 하나는 ‘충격’, 하나는 ‘매료’였습니다. 그때 여행자들은 아시아를 갔다오면 마치 화성이나 달처럼 다른 별나라를 갔다온 듯 말했습니다. 아시아는 모든 것이 달랐고 불가해한 것으로 가득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괴테의 생각은 간단했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의 인류다, 문화도 하나다, 다만 여러 가지 형태를 띠고 있을 뿐이다는 것이었지요. 에드워드 사이드가 그의 책 ‘오리엔털리즘’에서 유럽은 항상 편견을 가지고 아시아를 봤다고 주장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괴테를 몰랐던 것이에요. 괴테는 외국인의 눈으로 독일을 보고, 동시에 독일인의 눈으로 외국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그의 문학을 풍부하게 했지요. ”

―아시아인들은 서구를 역사·문화적으로 어떻게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까.

“아시아인들은 항상 정부와 국가와 자신이 태어난 고향마을 등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서구인들은 대체로 개인을 중심으로 생각하지요. 그러나 어떤 국면에서든 완전 이해란 불가능합니다. ”

―동·서양 이해 차원에서 독일통일과 한반도의 화해분위기는 어떻게 비교하고 있습니까.

“내가 린저를 비판한 것이 한반도의 데탕트를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통일이 되겠으나 문제가 있을 것을 미리 내다보아야 하고, 지금부터 대비해야 하는 것이지요. 정치적으로 일당 국가와 민주국가는 양립이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마치 호환이 안되는 컴퓨터 프로그램과 같습니다. 나는 통독 후 10년이 지난 지금도 동독 출신을 구별해낼 수가 있습니다. 그들이 똑같은 말을 쓰고 있지만, 말하는 방식이나 사고 방식을 보면 금방 드러납니다. 민주주의는 어느날 선물처럼 주어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

―동·서양의 작가와 지식인들이 오해의 벽을 넘어 함께 걱정해야 되는 가장 긴급한 과제는 무엇입니까.

“인구과밀입니다. 아시아에 여행을 가면 나는 조그만 주거공간에 사람이 너무 많이 살고 있는 것을 볼 때 놀라곤 합니다. 우리집을 방문한 중국 작가들은 내가 궁전에 살고 있다고 부러워하더군요.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에도 폭력, 마약, 범죄 등의 문제가 있지요. 그러나 그것이 루이제 린저가 말한 것처럼 현명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작가· 지식인·시민 등 각자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정치적으로 그리고 공공 의식을 갖고 현실에 참여해야 합니다. ”

◇약 력

▲1944년 독일 베츨라 출생

▲본대학, 베를린대학에서 독문학과 슬라브문학 전공

▲‘틴텐피슈’지 발행인, ‘고어레벤’ 출판사 편집인, ‘디 자이트’지 고정필자, 르완다·코소보·캄보디아 현지 특파원 등 역임

▲주요 소설:‘들어본 적 없는 사건들’(1966), ‘성 도밍고 섬의 이혼’(1976), ‘하이티 셰리’(1990), ‘카프카의 성에서’(1996)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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