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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추억]장마당에 가면 북한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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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2.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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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우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남한에는 장마당(시장)이 없는 줄 알았다. 내 딴엔 백화점이 남한의 장마당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대문이나 동대문같은 큰 시장도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 놀랐다. 내가 살던 함북 청진에도 그보다는 아니지만 크고 명성이 높은 수남장마당이 있다. 타지방 사람들도 알아준다.


북한에도 백화점이나 직매점같은 상점이 있긴 하나 문만 열어놓을 뿐 물건이 없어 운영은 되지 못했다. 외화상점이나 선원구락부같은 고급상점은 부유층이나 엘리트만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사람들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곳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자연히 시장으로 몰린다.

당국에서는 장사를 못하도록 줄곧 단속을 하지만 워낙 규모가 커져 버려 막을 수도 없는 것 같았다. 수남장마당은 정말 없는 게 없어 보였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었다. 어물전, 옷가게, 신발가게, 음식점 할 것 없이 죽 늘어서 있어 그야말로 입맛대로 고를 수 있다. 물건을 파는 사람만 3만명은 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중국물품이 주를 이루지만 일본제와 한국제도 드물지 않았다.

내가 본 한국제품은 주로 화장품이었는데 인기가 좋아 사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당국에서 남한제품은 팔지 못하도록 지시를 내렸기 때문에 몰래 사고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큰 장마당이었던 만큼 도둑·강도가 적지 않아 여자들은 쇼핑을 할 때 남편이나 아들을 대동하고 나오는 일이 많았다.

장마당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은 고아로 떠도는 꽃제비들의 모습이다. 하루는 어머니와 함께 장을 보러 갔다가 점심때가 돼 음식가게에 앉았다. 음식매장에는 꽃제비(거지)들이 특히 많았다. 손님이 먹다 남긴 찌꺼기라도 차지하려고 주위를 맴돌다 손님이 밥그릇을 비우면 쏜살같이 달려온다. 어린 꽃제비들이 옆에서 지켜보면 차마 그릇을 비우지 못하고 그냥 일어나는 사람이 많다.

주문한 음식을 절반 가량 먹고 있는데 웬 남자 꽃제비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밥그릇이 비나 안 비나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장난끼가 발동했다. 비울 듯 말 듯 하다가 다 먹어치워 버렸다. 그리고는 승자의 웃음이라도 짓는 양 아주 거만하게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그 애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졸업할 때까지 같은 반에서 공부했던 내 친구였다. 중학교가 달라서 그 사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몰랐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땟국이 전 교복을 입고 꽃제비가 돼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어머니께 부탁해 그 애를 위해 밥을 샀다. 친구앞인데도 자존심이고 체면이고 무시한채 고맙다는 인사만 하고 아주 맛있게 먹어치웠다. 그 일이 있고부터는 수남장마당에 갈 때마다 그 친구를 만날까 두려웠다. 수남장마당은 북한의 현실을 가장 절실하게 파악할 수 있는 곳이었다고 생각된다. 사람들이 아울러 사는 모습과 사람사이 오가는 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통일이 돼도 남대문·동대문시장처럼 수남장마당도 계속 존재할 것 같다.
/1986년 함북 청진 출생. 2000년 입국. 대입 준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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