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차 남북 장관급회담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사실상 마무리하면서 그 성과와 실패를 구체적으로 결산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이번 회담은 정치적 성격을 배제하고 실무문제 해결에 주력해야 한다.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 내는 일은 깨끗이 단념하고, 기존의 합의사항들을 어떻게 실천해 나갈 것인지에 관해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안들을 확실하게 북으로부터 보장받아야 한다.

북한당국이 남북 회담을 자신들의 필요와 편의에 따라 열고 닫기를 마음대로 하면서 합의사항마저 제멋대로 내팽개치고, 현 정부가 여기에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는 행태에 대다수 우리 국민들이 심한 환멸을 느끼고 있음을 남북 당국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이번 회담에 임하는 북한 당국의 진지성을 가늠해 보기 위해서라도 우리측은 서해교전 사태에 대한 북한측의 분명한 사과와 재발방지책을 요구해야 한다. 이 문제를 북측의 모호한 ‘유감’ 표명 전통문 하나로 어물쩍 넘겨서는 어떤 남북대화도 속빈 강정일 수밖에 없다.

이산가족 상봉, 경의선 연결, 개성공단 건설, 금강산 육로(陸路)개통 등 이번 회담의 주요 의제들은 오래 전에 합의되고 어느 정도 진척된 것들이라 북한 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실현할 수 있는 과제들이다. 문제는 북한이 남북관계를 협력과 화해로 끌고가려는 진정한 의지가 있느냐인 것이다.

북한은 최근 물가와 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새로운 경제실험에 나섰고, 이것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외부의 지원이 절실한 형편에서 대외적 유화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런 만큼 현 정부가 임기 말의 초조감에서 또다시 실속없는 합의문 몇 장에 정부차원의 대북 지원에 나선다면, 그것은 ‘받을 수 있을 때 다 받자’는 북한 의도를 충족시켜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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