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급진전돼 경의선(경의선) 경원선(경원선)의 복원과 개성~문산 간의 도로개설이 추진·진행되고 있다. 경의선은 18일 기공식이 거행됐으며, 철도가 지나가게 될 비무장지대(DMZ)의 지뢰제거 작업도 곧 실시될 전망이다.

지난 50년 동안 남북관계의 현상을 유지케 한 유일한 법적 장치가 휴전협정이었기에 이러한 사업이 휴전협정의 존속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휴전협정의 핵심은 한반도에 1개의 군사분계선을 두고 쌍방이 이 선에서 2km씩 후퇴한 DMZ를 설정함으로써 전쟁의 재발을 막는 데 있다(제1항). 협정상 군사분계선에 대해서는 군사정전위원회(군정위)의 특정한 허가없이는 누구도 이를 통과할 수 없게 돼있고(제7항), DMZ에 대해서는 자기측 지역과 상대측 지역을 구별하여 다음과 같이 하도록 돼 있다.

자기측 지역에 대해서는 민사행정과 구호사업의 집행에 관계하는 인원과 군정위의 특정한 허가를 얻은 인원 이외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제9항), 그리고 자기측에서 상대측 지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상대측 사령관의 특정한 허가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게 그것이다(제8항).

협정에는 이미 협정에 대한 수정 또는 증보(증보)는 쌍방 사령관간의 합의에 의해서만 가능하고(제61항), 효력기간에 대해서는 쌍방의 정치적 협상을 통해 평화정착이 실현될 경우 이를 반영한 협정에 의해 휴전협정이 명확히 교체될 때까지 유효하다고 명시하고 있다(제62항). 이 같은 협정상의 규정에 비추어 철도의 복원 및 도로개설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 것인가?

첫째, 이 사업이 법적으로 반듯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착수 전에 휴전협정에 서명한 쌍방의 사령관 또는 그 후계자의 특정한 허가, 그리고 군정위의 특정한 허가를 받아야 하리라고 본다. 이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그 결과는 협정의 폐기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휴전협정에는 상기한 내용 이외에 쌍방의 군사력을 협정체결 당시의 수준으로 동결시킨다는 규정도 있는데 이것이 폐기된 지는 오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정의 효력이 지금까지 유지된 것은 군사분계선과 DMZ제도가 살아 있기 때문이었다. 협정상의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이것마저 효력을 상실하게 되어 협정 자체가 소멸할 수 있다.

둘째, 협정상의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면 착공에 앞서 남북간의 평화정착 및 이를 보장하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하리라고 본다. 지금 남북간에는 기본합의서와 그 이행을 위한 부속합의서가 체결돼 있지만 가동되지는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휴전협정마저 없는 것으로 된다면 남북관계에 적용될 법적·제도적 장치는 전무한 것으로 된다.

1970년 10월 24일 UN총회에서 채택된 우호관계원칙 선언이란 것이 있다. 법적 구속력을 가진다는 이 선언은 모든 국가에서 휴전선 등 국제적 분계선을 존중할 의무가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휴전선 또는 국제적 분계선이 조약을 전제로 하는 것일 때 동 조약이 소멸되면 그 선이 존속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셋째, 군사분계선에 대해서는 휴전협정이 폐기되었다고 주장해 온 북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를 원용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잇단 남북간 왕래에서 북한은 군사분계선의 통과 대신 서해 항공로의 이용을 고집했는데 이것은 군정위의 허가를 얻음으로써 그 존재를 인정하게 되는 결과를 회피하려는 측면도 있지만, 허가없이 통과함으로써 군사분계선의 효력이 소멸된다는 측면을 고려한 점도 없지 않다고 본다.

남북관계에서는 법적 검증은 필요하며 그래야만 천려일실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김찬규 / 경희대 명예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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