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근
/북한농업전문가, 한국농업정책학회장

북한은 임금과 물가를 대폭 인상함과 동시에 달러 대비 북한 원화의 환율을 암시장 시세로 현실화시키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번 조치의 첫번째 배경은 지난 수십년간 지속돼온 국가수매 정책의 실패에 따른 재정적자의 누적에다 사회주의권으로부터 지탱해온 각종 원조 중단으로 국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재정부담이 발생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두번째는 주민들의 생산의욕을 높여 생산성을 향상시키려는 의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평생동안 평균주의 분배에 길들여진 주민들이고 보면 소유권 허용은 배제한 채 임금만 올린다고 해서 생산성이 올라가기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북한의 의도는 물가인상을 통해 낮은 국영가격 때문에 모든 물품이 농민시장으로 흘러가는 폐해를 막고 국가상점을 활성화하는데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 상품가격을 농민시장 수준으로 상향 조정하고 생활비(봉급)도 여기에 맞춘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 경제가 80년대 말부터 침체되기 시작하면서 식량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생필품 공급이 줄어들면서 93년부터 식량생산의 취약지역인 함경도 등 일부지역에서는 식량과 생필품의 공급이 중단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이들 식량과 생필품부족은 국영상점의 기능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고 설사 재고 물품이 존재한다 해도 특정계층만 구입이 가능할뿐 일반 주민은 고물가의 농민시장에서 상품을 구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더 많은 혼란을 초래할 것으로 보이며 계층간의 소득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당원, 군인, 평양시민 등 특수계층은 종전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들 특수계층에게는 종래 물자가 우선적으로 공급되어 왔으며, 임금과 물가를 상향 조정하더라도 이들의 필요물품 구매에는 큰 장애가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밖의 하류계층, 특히 800만~1000 만 명에 달하는 중소도시 공장 근로자들은 90년대 들어 거의 배급을 받지 못하거나 정상배급의 50 % 미만 수준에서 연명해왔다. 이들은 사실상 북한당국의 보호 영역밖에 있었기 때문에 봉급인상에 귀찮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물가 상승은 농산물의 수매가격 인상을 가져와 농민들의 증산의욕을 자극할 것 같지만 비료 등 농자재의 절대적 부족으로 증산 유인책은 되지 않을 것이다. 경제난으로 식량 등 생필품 공급을 대폭 늘릴 수 없는 현 상황에서 봉급인상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화폐 공급을 늘릴 경우 사경제부문의 물가상승을 유발하는 등 악순환으로 이어져 북한 경제는 더욱 곤경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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