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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달인 (9) 김경원 사회과학원원장 미 인터넷신문 보며 매일 새 어휘공부 “며칠만 안해도 녹스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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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0.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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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we presume that all its passengers and crew are dead, the victims of an incomprehensible act of deliberate and premeditated violence…. ”

지난 83년 9월 2일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1차회의. 8월 31일 소련이 KAL기를 격추한 사건에 대해 당시 김경원(김경원·64·사회과학원장) 유엔 대사가 소련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렸다. 김 전 대사는 이날 거침없는 영어로 연설하고, 각국 대표들이 쏟아내는 질문을 받아냈다. 유창한 영어와 정연한 논리로 폴란드 등 친(친)소련 국가들의 공격을 막아냈고 서방 국가들의 지지를 끌어냈다. 이 무대는 김 전 대사의 영어실력이 국내-외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안보리 회의에 앞서 미 NBC 방송의 생방송 프로그램에 나가 진행자로부터 KAL기 격추 사건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도 척척 받아냈다. 영어 실력 없이는 어려운 자리였다. 지난 70년대 김 전 대사와 공개 대담 기회를 가졌던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나보다 영어가 더 나은 것 같다”며 그의 실력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그러나 김 전 대사가 영어와 인연이 된 것은 동기생보다 3년이나 늦은 서울고 1학년 때였다. 북한의 남포 제2중학교를 나온 김 전 대사는 그 곳에서 영어 대신 러시아어를 배웠다. 첫 영어시간에 친구들이 교과서를 읽는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영어 단어 외우기 되게 힘들더구먼요”라며 당시의 어려움을 떠올렸다.

김 전 대사는 “지금 생각해보면 뒤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열심히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3년 안에 영어를 정복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영어에 더욱 매달렸다는 것이다. 철학 취미를 살려 영문 철학서를 파고 들었다. 당시 주로 읽었던 것이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영문 철학서. 책을 읽다 모르는 단어가 나타나면 반복해서 외웠다. 그는 “영문 철학서 십수권을 독파하자 영어에 대한 공포감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영어에 푹 빠져든 것은 지난 56년 서울대 법대 1학년을 마치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면서였다. 그는 미국 동부의 윌리엄스대에서 기반을 착실하게 닦았다. 김 전 대사는 미국 친구들도 꺼려하는 ‘Modern English Poetry(현대 영시)’를 일부러 청강, TS엘리엇 등 유명 시인들의 시를 암송했다. 그들의 액센트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시인들의 육성 녹음 테이프를 구해, 테이프가 너덜해질 때까지 반복해 들었다.

그는 지난 85년 주미대사로 임명됐을 때도 영어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매일같이 열리는 만찬에서 상대방(외교관)과 그 날 상황에 알맞은 유머를 구사하기 위해 영어 문장들을 달달 외우곤 했다. 그는 “적절한 영어를 내놓기 위해 머릿속은 쉴 틈이 없었다”며 “이 때문에 식욕을 잃어버릴 정도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요즘도 “며칠만 영어를 쓰지 않으면 녹이 스는 것 같고, 더듬거린다”고 말한다. 환갑을 훌쩍 넘긴 김 전 대사가 매일 영어에 들이는 시간은 너댓시간. 최근에는 유럽 투자전문가를 만나는 등 외국인과 대화하는 자리를 거르지 않고 있다. 문장과 어휘는 독서와 인터넷을 통해 풍부하게 하고 있다.

/글=손정미기자 jmson@chosun.com

/사진=이기룡기자 kr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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