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해범
/국제부 차장대우 hbjee@chosun.com

중국 옌지(延吉)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탈북자 이모(58)씨는 중국 경찰에 붙잡히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중국 공민증(公民證)이 있기 때문이다. 이씨가 두만강을 처음 건넌 것은 3년 전. 옌지에 도착한 뒤 조선족 동포들의 도움을 받아 중국 호구(戶口·호적)를 만들었다.

이씨가 한 달에 버는 돈은 약 400위안(元·한화 약 6만원). 이 돈을 알뜰히 모아 1년에 한두 번 평양으로 돌아간다. 중국 인민폐와 식량, 옷, 의약품 등은 북한에 남은 가족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이씨는 한국에 갈 마음은 없다.

지난달 정신문화연구원 주최 토론회에 참석한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이씨처럼 중국 사회에 적응하면서 국경을 왕래하는 탈북자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체포의 두려움 속에 한국행을 기다리는 탈북자가 많고, 그들 중 비정부기구(NGO)의 도움으로 망명에 성공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국행 대신 중국에서 돈과 식량을 구해 북한으로 들어가려고 국경을 넘나드는 탈북자도 상당수라는 지적이다.

이들의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르지만, 한 중국 학자는 “2~3년 전까지도 중국 동북3성(東北三省)의 조선족 인구는 국제결혼과 해외 노무출국 등으로 175만명까지 줄어들었으나 작년 말 인구 조사에서 갑자기 204만명으로 늘어났다”면서, “이것은 탈북자들의 신분변화와 관계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즉 조선족 총각과 결혼하거나 호구를 취득하는 탈북자들 때문에 조선족 인구가 갑자기 늘었다는 해석이다.

중국 학자들은 또 북한이 강제 송환된 탈북자의 수용 기간을 종전의 6개월~1년에서 3개월로 단축했다고 전했다. 탈북자들을 가둬두고 교화하는 체계가 그만큼 느슨해졌다는 분석이다. 북한의 국경 수비병들도 탈북을 방관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금년 3월 베이징(北京)에서 만난 몇몇 탈북자들은 “약간의 금품만 건네주면 국경 수비병들은 비번 시간을 알려주거나 모르는 척 딴전을 피워 통과하게 해준다”고 했다. 이러다 보니 북·중 국경선 전역에서 탈북이 일어나고 있으며, 한 번 붙잡혔던 사람이 재탈북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중국 학자들은 지적했다.

이렇게 보면 중국 동북3성은,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한 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 주(州)와 닮은 데가 있다. 인종과 종교가 동일한 발루치스탄 지역이 아프간 난민들의 피난처가 되었듯이, 동북3성 역시 탈북자들의 거대한 ‘저수지’로 변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왕래(往來) 탈북자’들의 정치적 영향력이다. 중국에서 시장경제를 체험하고 KBS 위성방송으로 한국사정에도 밝아진 이들은, 북한 사회에 인민폐와 옷가지뿐만 아니라, 그동안 보고 듣고 느낀 무형(無形)의 정보들을 끊임없이 쏟아놓을 것이다. 한 명의 탈북자가 10명의 주민을 접촉한다고 쳐도, 수백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바깥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이런 점에서 탈북자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왕래 탈북자들’은 북한을 급격히 변화시키지는 못할지라도 서서히 ‘밑으로부터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동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김정일 정권에 압력이 될 것이지만, 북한의 장래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햇볕정책 때문에 남한 정부로부터 외면당했던 탈북자들이 햇볕정책의 목표였던 북한의 변화에 동인(動因)으로 작용한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탈북자를 보는 시각과 정책에도 변화가 필요한 때가 왔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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