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斗植
/논설위원

요즘 한·미(韓·美)관계는 뭔가가 잔뜩 틀어져 있다. 손발이 맞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한·미 모두 아예 손발을 맞추지 않기로 작심한 것 같다.

대북(對北) 공조만 해도 그렇다. 김대중(DJ) 정부는 임기 마지막을 장식할 북한 관련 ‘대박’을 터뜨리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거꾸로 부시 행정부는 햇볕정책의 조역을 맡지는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임기말의 DJ 정부와 본격적인 대북공조를 펼치기보다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결과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최근 브루나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무장관 회의 등을 계기로 미·북대화가 재개될 전망이지만, 부시 정부의 기조(基調)가 크게 변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이런 부시 정부의 속내는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한·미 정부 관계자들은 물론 민간 전문가들까지 공개적으로 찬반 격론을 벌이는 상황이다. 클린턴 정부 때 대북정책조정관을 지낸 웬디 셔먼 대사가 부시 정부의 결정에 격분해 “올해 말 대선에서 있을 한국 리더십의 변화가 대북정책에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을 정도다.

미국의 지원 없이 추진되는 남북관계는 그 한계가 분명하다. 남북 해빙무드를 ‘연출’할 수는 있어도 실질적인 문제해결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실체가 빈약한 신기루 같은 행사만 만들어내는 것일 뿐이다. 또 ‘남북만의 화해분위기’는 미국발(發) 경고 하나에 당장 얼어붙을 수 있는 것이 한반도의 현실이다.

먼 과거를 떠올릴 필요도 없다. 지난 2월 부시 대통령 방한을 전후해서 겪었던 ‘악의 축(軸)’ 발언의 파장을 생각해 보면 그 답은 어렵지 않다. 게다가 미국의 눈으로 볼 때 한반도에는 북한 핵·미사일 문제 같은 인화력 강한 현안들이 즐비해 있고, 이를 다루는 미·북 회담이 시동을 걸고 있다.

한·미 공조는 한반도호(號)를 움직이는 양쪽 엔진이다. 한쪽 엔진이라도 이상을 보이면 배의 운항 자체가 위기를 맞는 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한·미 관계에 피곤하고 짜증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두 정부가 한·미 공조를 언급하는 빈도나 강도도 줄었고, 그 말을 할 때조차 요식행위를 치르는 것 같은 무성의함이 느껴진다. 지난 2월 부시 대통령 방한 이후 한·미 정상이 언제, 무슨 내용의 대화를 나눴는지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다.

오히려 ‘섭섭함’을 드러내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한국 정부와 여권 인사들은 부시 정부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털어놓는다. 햇볕정책이 실패한다면 그 책임은 상당 부분이 부시 정부에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만약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000년에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가 1년만 더 남아 있었어도…”라며, 미국의 전 정권에 대한 향수(鄕愁)까지 드러낸다.

미국 역시 할 말이 많은 눈치다. 어지간해선 속내를 드러내지 않지만 종종 “한국이 이럴 수 있느냐”는 불편한 심사가 느껴진다. 미국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부시 정부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섭섭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대사관 및 직원 숙소의 덕수궁 인근 정동(貞洞) 이전 문제 같은 현안이나, 의정부에서 여중생 2명이 훈련 중인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사건 등 일련의 반미(反美) 정서의 확산에 대해 현 DJ 정부가 팔짱을 낀 채 방관하고 있다는 불만이다. 한 미국 관리는 “한국 정부 내에서 누구도 책임있게 미국의 관심사항들을 다루려 하지 않는다”라고 토로했다.

한때 ‘바위처럼 단단하다(rock-solid)’고 표현되곤 하던 한·미 관계는 현재 심상치 않은 균열에 신음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것은 종종 유아독존적 태도를 보여온 부시 정부의 잘못도 있지만, 한국측 책임도 크다. DJ 대미(對美) 외교력이 한계를 드러냈고, 현 정부가 줄곧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국내적 물음에 모호한 태도를 취해 온 것 등이 결국 기축(基軸) 동맹국인 미국까지 DJ 대북정책에 등을 돌리는 상황으로 발전한 것이다. 임기말 DJ의 햇볕 드라이브는 위험한 외줄타기인 것이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