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어제 북한측에 남북대화 재개를 공식 제의했다. 북측이 지난 25일 서해교전 사태에 대해 모호한 ‘유감’을 표시하면서 남북접촉을 제안한지 닷새만에 우리 정부가 이를 수용한 것이다.
정부의 이같은 대응은 처음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남북대화를 하거나, 아니면 깨는 일의 주도권은 늘 북측에 있어왔고 이번에도 그같은 방식이 반복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정부가 남북대화를 하기로 결정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들이 있다. 그것은 김 대통령과 현 정부가 국민들에게 다짐했던 약속들이다.

지난 4월 임동원 특보 방북 이후 한때 탄력을 얻은 듯했던 남북관계가 궤도이탈한 책임은 전적으로 선제기습 같은 일을 저지른 북측에 있다. 장관급회담 등 남북대화에서 이 부분에 대한 정리가 명확하게 있어야 한다. 서해사태에 대한 북한의 이른바 ‘유감표시’는 모든 면에서 대단히 미흡한 게 사실이다. 따라서 앞으로 남북대화에서 정부는 스스로 밝힌 북한의 명확한 사과와 재발방지, 책임자 처벌 등을 북측에 요구하고 관철시켜야 한다.

정부는 남북 경협추진위가 열리면 북한에 쌀 30만t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서해사태에 대한 충분한 사과없이 북한이 또 쌀만 챙겨가는 일이 벌어진다면 국민정서가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남북대화를 훼방놓자는 게 아니라, 상벌(常罰)의 경계를 분명히 해두는 게 앞으로의 남북관계에 보약(補藥)이 될 것이라는 인식에서 나온 지적인 것이다.

또 김 대통령은 여러 차례에 걸쳐 북한에 대한 환상은 없으며, 임기말에 무리하게 남북관계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임기말에 굳이 남북대화를 다시 시작하려는 것이 결코 개인적인 또는 정파적인 정략과 집착 때문이어서는 안된다. 만약 김 대통령이 이같은 스스로의 다짐을 지키지 못하면 심각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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