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26일 “북한이 서해교전 사태에 대해 사실상 사과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해사태 발발 한달여 만에 북한이 보내온 전화통지문에 담긴 ‘우발적인 무력충돌’ ‘재발방지 공동노력’ 등의 부적절하고도 모호한 표현들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과로 보기는 어렵다.

국회 1당인 한나라당은 물론 여당인 민주당조차 ‘미흡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정부도 강경한 국민여론에 놀라 겉으로는 북한의 사과에 대해 ‘신중한 대응’을 강조하고 있는 마당에 김 대통령이 나서서 “북한이 사실상 사과했다”고 주장한 진짜 이유와 배경은 무엇일까?

김 대통령은 “북한이 사실상 사과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로 ‘전례없이’ ‘신속하게’ 같은 표현까지 동원해가면서 북한이 과거 어느 때보다 빨리 ‘유감’을 표시한 점을 꼽았다. 하지만 이것은 북한이 그만큼 뭔가가 급했거나 임기말의 김대중 정부로부터 ‘더 큰 무엇’을 얻어내려는 속셈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지, 결코 사과의 진실성을 판단케 하는 척도가 될 수는 없다.

결국 김 대통령의 언급은 남북관계에 대한 ‘DJ식 집착’의 발목을 잡고 있는 서해사태라는 족쇄를 풀려는 마음이 급한 상태에서 나온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꽃다운 장병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월드컵 환희에 들떠 있던 국민을 일순간에 분노로 들끓게 했던 서해사태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국정 최고책임자이자 군 통수권자로서 다른 누구보다도 침통했어야 할 김 대통령이 오히려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것은 보기에 딱한 일이다.

특히 북한의 유감표시를 전후해 나오고 있는 핑크빛 대북사업들은 임기말임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부가 남북관계에 대한 집요한 성과주의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짐작케 한다. 북한 개성공단에 전력 10만㎾를 제공한다는 한국토지공사의 사업안 같은 대형 대북 프로젝트들은 임기말의 정부가 추진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대북 전력지원 문제는 한반도 안보 및 북한의 변화방향 등과 직결되는 전략적인 사안인 만큼 국민적 동의와 공감이 있어야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현 정부는 모든 분야에 걸쳐 국민적 신뢰를 전면적으로 잃은 상태다. 김 대통령은 이제 자신의 임기 중에 남북관계에서 ‘감나무도 심고 감도 따려는’ 식의 이해할 수 없는 아집과 과대망상을 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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