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15일 간담회는 아들 홍업·홍걸씨 구속과 북한의 서해도발, 장상 총리지명자를 둘러싼 잡음 등 최근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육성(肉聲)으로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이런 대형 사건들이 터진 후 처음 마련된 자리였기에, 김 대통령으로서는 국민들 가슴에 남은 상처와 상심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이 같은 기대를 가진 것 자체가 허망하게 느껴질 만큼 이날 간담회에서 보인 김 대통령의 태도에는 진솔함과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부족해 보였다. 오히려 김 대통령과 청와대측은 국민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에는 여전히 귀를 막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월드컵 성공과 ‘포스트 월드컵’ 대책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그가 새로 취임한 대통령처럼 의욕을 보이기보다는 앞으로 남은 임기를 대과없이 마무리짓길 바라는 게 국민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아태재단과 대통령 친·인척 비리 감시체제의 문제, 문책인사 등과 관련한 언급은 국민들의 분노에 대한 김 대통령의 이해 수준을 보여준다. 국민들 눈으로 볼 때 김 대통령은 이 같은 사건들의 피해자가 아니라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원인제공자다. 김 대통령에게 철저하게 진솔한 태도와 설명을 요구하는 것도 이런 인식에서다.

김 대통령은 “아태재단은 이번 검찰발표에서 비리가 발표된 일이 없다”며, 본인이 참여하지 않은 공익법인으로 새출발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검찰은 아태재단 관련 의혹들을 제대로 수사한 적이 없고, 지금까지 거론된 의혹만으로도 공익법인으로서 기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데도 김 대통령이 아태재단에 집착하는 까닭은 대체 무엇인가?

김 대통령은 또 북한이 성의있고 책임있는 자세로 납득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면 남북관계 개선이 가능하다고 하면서도, 그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다. 만약 임기 중 남북관계 치적을 남기기 위해 서해사태를 어물쩍 넘길 경우 엄청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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