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들어 끊임 없이 논란을 거듭해 온 것이 햇볕정책이다. 햇볕정책은 현 정권의 레이블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정작 햇볕정책이 어떤 정책인지 국민은 명확히 모른다. 현 정권도 속시원히 밝힌 적도 없다. 있다면 북한에 대한 ‘포용’이며 ‘지원’이며 ‘신뢰구축’이며 ‘평화유지’ 정도다. 그러나 이는 현 정권만 내세워 온 것이 아니라 역대 정권 모두가 다 내세웠다. 이는 또 우리 국민 누구도 부정하거나 거부하지 않는 국민적 목표다.

어느 정권이든 북한을 포용하지 않고 지원하려 하지 않았다면 견뎌낼 수 있었을까. 어느 정권이든 신뢰구축과 평화공존 정책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했다면 정권 자체가 유지될 수 있었을까. 이런 남한과 달리 북한은 정반대되는 도발만 해왔다. 아웅산 사건, KAL기 폭파, 무장간첩 남파, 서해안 교란, 그 파괴공작은 헤아릴 수가 없다. 신뢰구축하자면서 신뢰를 무너뜨리고, 민족공조하자면서 공조를 파괴한 것은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다.

현 정권들어 햇볕정책이라는 것을 쓰고, 남북정상회담이라는 획기적 조우가 있었다 해서 이런 북한의 일방적 도발이나 일방적 파괴행위가 달라진 것이 있는가? 신뢰가 전보다 더 구축됐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있으며, 더 평화로운 남북관계가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있는가? 그렇다면 햇볕정책이란 무엇인가? 역대 정부의 상호주의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현 정권의 지금까지의 대북정책으로 미뤄 미상불 햇볕정책은 정책 성향상으로는 ‘민족우선’이고, 정책방법상으로는 ‘현금지원’으로 분석된다.

‘민족우선’은 그 대칭되는 것이 ‘국가우선’이다. 우리의 남북관계에서 ‘민족우선’이냐 ‘국가우선’이냐는 우리 국가목표가 어디 있느냐에 따라 자명해진다. 만일 그 목표가 남북한의 신뢰구축이며 평화공존이며 통일기약이라면 철저히 국가우선이 되어야 한다. 어느 민족이든 민족이 갈라져 각기 다른 국가를 세우면 언필칭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치열히 서로가 서로를 파괴하려 한다.

급기야 전쟁이 벌어지면 그 어떤 이민족(異民族) 간의 전쟁보다 잔인하게 서로가 서로를 죽인다. 6·25가 그 경험이다. 6·25전쟁 3년 동안 우리가 우리를 살상한 것이 일제 36년 동안 일본이 우리를 살상한 것의 수십배가 된다. 이는 마치 다른 종교끼리의 이교도(異敎徒) 간의 싸움보다 같은 종파 내의 이단자(異端者) 간 싸움이 더 치열하고 잔인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이를 해결하는 것이 ‘국가우선’이며 거기에 상응하는 상호주의다. 서로가 같은 민족임을 잊고 일본이나 독일 태국 등 외국인 대하듯이 서로 대하는 것이다. 그 외국들은 우리를 파괴하거나 전복하려하지 않는다. 상호주의에 의해서 신뢰를 구축하고 평화를 유지한다. 민족우선이니 민족공조는 피의 진한 농도만큼 정서상으론 감동을 준다.

그러나 그 피의 농도만큼 현실적으로는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지배하고 흡수하려 한다. 그 결과는 더 격한 갈등 상태고, 더 치열한 분단 상태며, 그 치열함의 지속이다. 역사상 어느 민족이 ‘민족우선’을 내세워 그 각기 다른 정치단위를 통합할 수 있었는가. 오로지 ‘국가우선’만이 유일의 수단으로 통합의 지름길이 돼 왔다.

국가 간의 지원도 차관이 아닌 한, ‘현물지원’이지 ‘현금지원’은 하지 않는다. 더구나 적대관계에서 지원을 요할 경우 더 현저히 현물정책으로 나아간다. 이 지구상에서 우리보다 더 큰 냉전세력을 코앞에 두고 있는 나라가 있는가? 현금을 지원하는 것만큼 그 냉전의 적대관계에선 그것이 총알이 되고 대포가 되고 미사일이 되고 핵무기가 된다.

금강산 관광 등으로 지급된 그 현금으로 그들이 쌀을 사고 비료를 사고 의약품을 샀다면 북쪽 동포는 그 만큼 덜 기아선상에서 헤매일 것이고, 탈북자 수도 그만큼 줄어들었을 것이다. 현금지원 만큼 ‘악의 축’을 키우는 것이 없다.

현 정권의 햇볕정책은 모두가 거꾸로 되어 있다. 지난 99년의 서해안 교란이나 지난달의 서해안 교전이 입증하듯, 이젠 ‘북방한계선도 철폐하라’ 하지 않은가. 내 영토 안에서 침몰된 함선을 인양하는 것도 이제 그들의 허락을 받으라 하지 않은가.

민족우선이니 현금지원이니 하는 햇볕을 받는 그만큼 그들은 더 맹렬해지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정부는 괴이쩍기 한량 없는 침묵만 지키고 있다. 이 모두 거꾸로 된 햇볕정책이 만들어낸 결과다. /송복 연세대 교수·정치사회학·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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