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天錫
/논설실장

김대중(金大中·DJ) 대통령이 뭔가 이상하다. 분명 무슨 변화가 있는 게 틀림없다. 정책이 변했다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연출의 박자가 맞지 않다는 말이다. 공식행사에 대통령의 모습이 비치거나 보이지 않는 것이 국민의 예상이나 기대와 자주 어긋난다. 말도 마찬가지다. 앞에 할 말과 뒤에 할 말, 길게 할 말과 짧게 할 말이 뒤집히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래서 요코하마 월드컵 결승전, 서해 전사 장병 영결식, 월드컵 국민축제, 일본방문 귀국보고가 끝나면 으레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뒤따랐다. 김 대통령은 50년 동안 정치로 단련된 대중 정치인이다. 대중 정치인은 국민의 마음을 읽고, 그에 따라 완급(緩急)을 조절하는 데 도가 튼 사람이다. 그런데 이 몸에 배고 밴 박자가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다.

원인이야 다 아는 사실이다. 길게 늘어놓을 것도 없다.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결과다. 대통령의 정치적 리듬이 국민과 어긋난다 라는 말은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고립돼 있다는 이야기와 한가지다. 국민으로부터 고립된 대통령은 자신이 고립돼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기 십상이다. 국민으로부터 고립되기 전에 먼저 측근으로부터 고립돼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처럼, 아니 전보다 더 열심히 국정에 몰두하려고 한다. 문제는 그러면 그럴수록 나라 안팎이 꼬이고 헝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손발인 관료들과 나라 밖 적(敵)들은 국민의 지지라는 ‘후방 지원’을 받지 못하는 대통령의 무력(無力)함을 환히 뚫어보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만 이런 게 아니다. 20여년 전, 당시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도 그랬다. 그도 측근으로부터, 이어 국민으로부터 고립되는 코스를 밟아 나갔다. 요즘도 미국의 새 대통령이 백악관 참모진과 내각을 구성할 때나, 의회나 언론과의 관계를 새로 설정할 때면 ‘카터화(化) 되기(Carterlization)’란 단어가 종종 얼굴을 내민다. 그리고 그 때마다 어떻게든 ‘제2의 카터’가 되는 일만은 피해야겠다는 다짐을 일깨우는 반면(反面)교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사실 김 대통령과 카터는 여러 모로 어울리는 면이 많다. 우선 ‘도덕’ ‘인권’ ‘민주’라는 단어를 가장 자주 사용했던 대통령이다. 기득권 세력에 대한 적대감을 지녔던 것도 비슷하다. 언론과의 관계도 그렇다. 사고뭉치 동생 빌리 카터의 스캔들 기사를 전략무기 감축협상 기사보다 7배나 많이 내 보낸다며 늘 툴툴거렸다. 어쩌면 문제된 아태재단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힌트도 퇴임 후 카터의 활동근거가 된 카터센터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른다.

이 카터의 임기 후반은 나라 안팎 여기저기서 와장창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정권의 명(命)을 끊어버린 것은 카터가 ‘트레이드 마크’처럼 애지중지했던 도덕과 인권외교의 붕괴다. 중남미가 흔들리고, 이란이 무너지고, 그 결과 석유쇼크가 덮치면서 국민의 마음은 카터를 떠났다. 이어 테헤란 미 대사관 인질사건과 그 인질 구출작전에 나선 헬리콥터의 추락은 카터시대를 매장했다.

“각하, 각하는 미국을 통치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정부를 관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1979년 가을 각계 원로는 캠프 데이비드에서 카터를 만나 이 진실을 전했다. 뉴욕타임스(NYT)지(紙)의 레스턴은 카터의 실패 원인으로 적들에게 “까불면 재미 없어”라는 식의 두려움을 주지 못한 점을 들었다. 자기 패를 상대에게 먼저 보여준 탓이다.

어디 그 탓만일까. 76년 3월 카터는 주한미군 철수정책 검토와 관련한 메모를 보좌진에게 내려 보냈다.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철군의 방법이지, 정책에 대한 찬반이 아니다.” 바로 그 순간부터 측근과 관료들은 철군반대에서 철군찬성으로 줄줄이 말을 바꿨다. 명분은 대통령과 다툴 수 없다는 것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이의(異議)제기 통로를 막아 버릴 때, 면종복배(面從腹背)는 아랫사람의 자위수단이다. 그래서 카터는 ‘진실’과 ‘측근’과 ‘관료’,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민으로부터도 고립돼 버린 것이다.

대통령의 집념이 집착으로 변하고, 원칙고수(固守)가 현실외면으로 변해가면, 누구도 대통령에게 구명밧줄을 던질 수 없는 법이다. 대통령만이 대통령을 구출할 수 있다. 이것이 ‘햇볕’ 논란 속의 김 대통령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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