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재향군인회 안보정책위원·예비역 육군대장

일본 방문을 마치고 지난 2일 서울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이 귀국보고에서 “정부는 북(北)에 대해 사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단호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하기에 곧 ‘단호한 조치’가 취해지기를 기대하였으나 현재까지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다.

이번 북한의 서해 도발은 철저한 준비로 시행된 ‘계획적인 도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며, 북한의 체제와 권력구조로 볼 때 김정일의 명령이나 승인이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이번 도발은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한 사건이며, 도발 후 ‘NLL(북방한계선) 폐기’를 들고 나오는 북한의 태도로 보아 제2, 제3의 도발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김 대통령과 현 정부는 김정일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은 물론, 특히 ‘재발 방지’를 위한 확실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것은 말로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확고한 의지를 행동으로 보이는 ‘단호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

“단호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그렇다면 전쟁을 하자는 것이냐?”고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단세포적인 사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단호한 조치’에는 ‘군사적 조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군사적 조치’도 있다. ‘비군사적 조치’가 곧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설사 ‘군사적 조치’라 하더라도 그 형태와 강도에 따라 다양하므로 모든 ‘군사적 조치’가 전쟁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1976년 8월 18일 북한의 ‘도끼만행’으로 미군 장교 2명이 살해되자 한국과 미국 양국 정부는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행동으로 보이며 압박하였다. 이에 김일성은 3일 만에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사과문을 보내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서해도발 사건이 발생한 후 현 정부는 국방부 장관의 성명 발표 이외에 북한을 응징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오히려 역행하는 조치들을 하였다. 금강산 관광을 계속하였고, 사건 발생 당일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햇볕정책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서둘러 발표하였으며, 통일부 장관은 “민간 교류와 경제 협력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김 대통령은 월드컵 관람을 위해 일본으로 갔고, 북한 경수로 요원 25명의 입국을 허용하였다.

북한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해 정부 당국자는 대응 조치에 역행하는 발언을 삼가고 금강산 관광을 비롯하여 일체의 교류와 접촉 및 경제 협력을 중단했어야 했다. 그것이 무력을 이용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응징 수단이며 우리의 단호한 의지를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그러한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우리들의 유효한 카드를 전부 날려 버리고 말았다.

어디 그뿐인가? 북한의 도발이 “계획적인 것이 아니고 우발적인 것”이라느니, “김정일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수 있다”고 하면서 미국과 일본에 ‘냉정한 대응’을 주문하였고, 미국이 ‘대북 특사 파견’을 취소하자 당혹해하면서 ‘대북 특사 파견’을 강권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정부의 태도와 행보는 북한을 두둔하고 김정일을 비호하는 것이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햇볕정책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번 사건은 햇볕정책의 허구성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북한이 변한 것은 하나도 없고 변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햇볕정책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국가 안보를 위해 전력투구할 때다.

더 늦기 전에 일체의 대북지원 및 경제협력과 금강산 관광을 포함한 남북교류와 접촉을 중지하는 등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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