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
/국제부장 changkim@chosun.com

서해에서의 북한측 도발 이후 우리 국내의 우려도 우려려니와, 우방인 미국과 일본 쪽의 반응도 대단히 심각하게 나오고 있다.
미국 정부는 당장 국무부의 제임스 켈리 차관보를 7월 10일 평양에 보내겠다던 제의를 철회했다. 미국 최대의 일간지인 월스트리트 저널은 사설에서 “이번 사건은 한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햇볕정책의 유해를 매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평소 한국에 대해서는 발언이 조심스러운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도 1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직후 기자들에게 “(이번 사건이) 햇볕정책에 상처를 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햇볕정책은 계속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도대체 이 정부가 생각하는 햇볕정책은 무엇인가.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으로는 길 가는 나그네의 옷을 벗길 수 없지만, 조용하면서도 따뜻한 햇볕은 나그네 스스로 옷을 벗게 만든다는 이솝 우화에서 따온 게 이 말이다.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강압과 봉쇄정책이 아니라 대화와 지원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정책의 목적은 북한의 변화이고, 수단은 대화와 지원이다.

현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표방한 이 원칙에 대해서는 한동안 일반 국민들의 높은 지지가 있었다. 하지만 현 정부의 임기가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그 성패를 구체적 성과로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기회있을 때마다 대화를 제의했고, 또 힘 닿는 대로―사실은 여론의 지지를 넘어 ‘퍼주기’란 말까지 들으면서―북한에 지원을 해 주었다. 그러나 대화는 별 진전을 이룬 게 없고, 우리가 노렸던 북한의 변화는커녕 실컷 주고도 급기야 느닷없이 뺨만 얻어맞은 꼴이 되고 말았다.

사실 남북대화는 현 정부 이전의 역대 정부도 다 추진했고, 일정한 정도로 대화와 교류가 있어왔다. 분명히 말하자면 남북대화는 북한이 응할 때는 됐고, 북한이 응하지 않으면 되지 않았다. 대화는 반대할 사람이 없다. 저 쪽이 호응해 오는 한, 더욱 적극 추진해야 한다.

현 정부가 역대 정부와 달리 했던 것, 햇볕정책의 차별성은 바로 대북 지원이었을 뿐이다. 그나마 5년이 다 돼가는 지금의 결산으로는, 소기의 목적은 거의 이루지 못한 채 주기만 한 것이다.

아직도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북한이 위험한 존재일수록 우리는 그들을 달래야 한다고. 하지만 ‘너희는 때려라, 우리는 맞더라도 주마’라는 자세는 결코 포용일 수도 없고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의 장래를 위해 올바른 정책도 아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럼 확전으로 가서 전쟁이라도 하자는 말이냐”고 말한다. 누가 전쟁을 원하겠는가. 다만 먼저 도발을 당하고서도 왜 그 자리에서 강력히 응징하지 못했느냐는 게 국민 다수의 울분이다.
더욱이 많은 국민들이 답답하고 억울해 하는 것은 정부와 사회 일각에서 사태의 본말을 뒤집는 듯한 논리와 언행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북한에 강경하게 대응할 것인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금강산 관광을 비롯해 북한 땅에 가 있는 많은 국민들의 안전 문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 같은 게 그런 예다. 현 정부의 햇볕정책 자체가 이번에 새삼 경험한 것처럼 어느 순간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를 북한에 대한 우리의 선택 폭을 좁히고 손발을 묶어온 것이라는 점은 말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장병들이 전사하고 다친 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북한군 피해도 컸다고도 한다. 그러니까 됐지 않느냐는 말인가.

말로는 전사한 병사들을 애도한다고 하지만 군 통수권자는 예정대로 일본을 방문했고, 정부 주최의 월드컵 축제도 요란하게 열렸다. 북한의 도발은 언제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니 너무 집착하지 말고, 한시라도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듯한 메시지 아닌가.
여기까지 온 ‘햇볕정책’을, 그래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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