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사태 후 한·미 공조에도 심각한 불협화음이 감지되고 있다. 미국정부는 한국측의 계속된 ‘강권’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를 대북 특사 자격으로 파견하려던 계획을 스스로 취소했다.

부시 행정부의 이같은 결정은 대북 특사파견 목적이 북한 핵 및 미사일 문제 등 어려운 난제들에 관한 본격적인 미·북 협상을 위한 것인데 북한의 서해도발 사건이 발생하자 협상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게 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갖고 있는 긴박성에 비춰볼 때 미·북간 협상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우려할 만한 일이지만, 더 큰 문제는 한심한 수준에 이른 한·미 공조다. 특히 서해사태 후 대북특사 문제를 놓고 한국정부가 보인 태도는 국제외교가의 조롱거리가 될 만하다.

서해사태 후 미국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도 청와대와 외교부 고위당국자들이 나서서 “예정대로 특사가 갈 것”이라고 미국 정부 입장을 앞질러 발표하는 촌극을 연출했다. 서해사태가 남북, 미·북 관계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겠다는 생각이 앞선 데서 비롯된 일이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서해사태를 보는 한·미간 시각 차이다. 김대중 정부는 ‘우발적 도발’ 가능성을 언급하며 상황을 축소하려고 하는 반면, 미국 정부내에서는 이 사건이야말로 북한 김정일정권의 본질적 속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고 한다.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북한이 월경(越境)해 도발했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밝힌 것은 ‘우발적인 것’이라고 한 김대중 정부의 소극적 태도와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국 정부가 대북특사 취소 같은 핵심 현안을 한국측과 충분히 협의하지 않고 그 결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상황도 이런 시각 차이가 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대미(對美) 외교망이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된 것이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