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남(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미국 항공사의 ‘과도한 수하물(수하물) 검색’을 이유로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기로 해, 상당한 외교적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일차적 관심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기에 김 위원장이 아메리칸 에어라인(AA) 비행기 탑승을 포기했느냐 하는 점. 우리 정부가 파악한 내용을 종합하면, 김 위원장은 베이징(북경)을 거쳐 2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김 위원장 일행이 4일 오전 11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뉴욕행 AA 비행기를 타려고 했을 때, 비행사 직원들과 짐 검색을 둘러싸고 승강이가 벌어졌다.

김 위원장 일행은 AA 직원들이 김 위원장을 전혀 예우(예우)하지 않고 수하물을 검사하려는 것에 항의, 탑승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AA 직원들은 김 위원장이 북한 여권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더욱 거세게 수하물 검색을 하려 했을 수도 있다.

우리 정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 항공사들은 테러 방지를 위해 엄격한 수하물 검사를 실시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북한 대표단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북한은 AA측의 ‘무례한 행동’ 이면에 미국 정부가 개입돼 있다고 의심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미국 행정부 측은 즉각 “이 사건은 미국 정부와는 아무 관계없는 우발적인 것이며 항공사가 잘못 다뤘다”는 입장을 남·북한 당국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의 고위당국자는 이같이 밝히면서, 미국과 북한이 이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외교 경로로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160여개국 정상들 앞에서 김영남 위원장과의 회담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강조하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하려던 김대중(김대중) 대통령의 구상은 일단 무산됐다.

정부는,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은 아니지만 국제무대에서 처음으로 남북 정상급회담이 열린다는 사실을 중점적으로 홍보해왔었다.

아울러,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깡패국가(rogue state)’ 이미지를 개선하려던 북한의 계획에도 제동이 걸릴지 모른다는 분석도 있다.

김 위원장은 밀레니엄 정상회의를 계기로 김대중 대통령과의 회담뿐만 아니라, 일본·스웨덴의 정상과도 회담을 가질 예정이었다.

또, 러시아, 이탈리아, 스위스 등 다른 여러 나라와의 정상회담도 추진했으나 역시 모두 무산됐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는 국제적으로 북한에 대해 ‘믿을 수 없는 나라’ 이미지가 고착되지나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하원기자 may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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