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동북아 정세는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 최근 미 정-관계와 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주제다. 로버트 매닝 미 외교협의회(CFR) 선임연구원은, 앞으로 상당기간 동북아 질서는 ‘혼미한 상태’를 겪게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난 수년동안 워싱턴에서 한반도 문제 등에 대해 가장 활발한 주장을 펴온 매닝 연구원을 만나, 미국 전문가가 보는 동북아 질서에 관한 전망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워싱턴=박두식기자】

―뉴 밀레니엄을 맞은 21세기 동북아 질서를 전망한다면.

“상당 기간 모호한(Ambiguous)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가장 큰 의문부호가 그어진 곳이 중국이다. 중국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가 미래 동북아 질서의 주요 관건이다. 적어도 10~20년은 흘러야 중국의 장래가 명확해질 것같다. 가령 중국이 시장지향형 경제 등 개혁 정책에 성공한다면, 그 자체가 근본적 질문을 제기할 것이다. 도대체 누가, 왜 공산당을 필요로 하는가라는 물음이다. 중국의 경제 개혁은 어떤 형태로든 정치 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중국의 주룽지(주용기) 총리가 이에 대한 물음을 던지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 중국 지도자들은 싱가포르 모델 또는 일본 자민당 모델, 아니면 일당 독재이면서 사이비 다당 체제를 유지해 온 멕시코 모델 등 세계 여러 나라의 경험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경제 개혁은 일정 형태의 정치적 변화를 유도할 수밖에 없고, 거꾸로 그것이 안되면 경제적 성공이 계속되기도 힘들 것이다. ”

―중국 공산당은 70년대 후반 이후 어떤 형식이든 경제개혁과 개방에 성공했고, 효율성을 발휘했다. 지나치게 중국 정치시스템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너무 미국적인 시각은 아닌가.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근본적인 질문이다. 시장경제 추구를 천명한 중국에서 공산당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물음인 것이다. 또 정치체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현재 중국이 직면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중국은 개방 이후, 지방에 대한 중앙의 통제가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중국은 어떤 형식으로든 보다 덜 중앙집권적이면서도, 지방과 중앙이 일할 수 있는 연방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솔직히 중국의 방향을 점치기에는, 미국이 너무도 모르는 영역이 많다. ”

―일본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보는가.

“북한 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군비 강화등 일련의 안보 도전에 직면한 후,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냉전 이후 한때 부수적 지위로 격하된 것처럼 보였던 ‘아시아의 균형자로서 미국의 역할’에 우선 순위를 다시 매기기 시작한 것이다. 미-일 신안보 가이드라인 등이 채택된 것이다. 동시에 일본은 독립적 군사 및 외교의 강화와, 아시아 지역에서의 경제적 네트워크를 공고히 하고 있다. 일본의 군사 예산이나 군비 실태는 세계 최대 수준에 가깝다.

북한 문제와 관련, 일본은 앞으로 전개될 지 모르는 한반도의 미래 지정학적 변화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일본이 아시아 안보 분야에서 보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쪽으로 가는 것인 데, 이는 거꾸로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 앞으로 일본의 안보 관련 노력들은 궁극적으로는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

―결국 동북아 안보 질서는 중-일관계가 상당히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가.

“현재의 중-일은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아주 독특한 위치에 있다. 두 나라가 동시적으로, 근대화한 주요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중-일 관계는 풀기 어려운 매듭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경우가 과거사 문제인 데, 중국인들은 아직도 반일(반일) 감정이 강하다. 한국이 김대중(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후 일본과의 매듭을 미래지향적으로 풀어갈 수 있었던 반면, 이것을 모방하려 했던 중국의 접근은 일본측으로부터 거부당한 상태다. 그런데 거꾸로 일본의 젊은층들은 과거 문제에 별 관심이 없고, 이들이 기성세대로 성장하고 있다. 중국내에는 과거 봉건시절처럼 아시아는 중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속국 형태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일본은 중국의 지배적 위치를 거부하고 있다. 중-일 협력이 동북아 안보 환경의 핵심적 요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이 건설적 협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

―동북아 안보 환경에서 북한의 위협을 평가한다면.

“북한의 존재는 동북아 질서를 더욱 혼미하게 만든다. 현재로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있게 10년, 또는 20년 후의 북한이 존재할 것인지 아니면 사라질 것인지를 말하기 힘들다. 할 방법이 없다.

클린턴 행정부가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94년 미-북 제네바 핵합의 당시의 전제로, ‘북한 붕괴론’을 암묵 채택했다는 점이다. 북한이 조만간 붕괴할 수밖에 없으니, 한-미 등 서구는 그때까지 시간을 벌면 된다는 가정 아래 제네바 합의를 채택하고, 북한의 위협적 행동에 관대하게 대처해 온 것이다. 결국 이 전제는 클린턴 정부에서 국방장관까지 지낸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에 의해 폐기됐다. 현재 북한 경제는 최근 10년동안 가장 좋은 상태에 있다고 한다. 북한은 클린턴 정부의 희망과는 달리 사라져 주질 않았다. 그렇다고 북한이 붕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오류다. 북한과 관련해서는, 언제 어떤 일도 가능하다. 김정일(김정일)이 갑자기 사망할 수도 있지 않은가. ”

―최근 발표된 국제전략연구소(IISS) 계간지에, 주한미군의 존재 양식의 근본적 변화를 예상하는 도전적인 주장을 펼쳤는 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김대중(김대중) 대통령은 주한미군이 통일 후에도 주둔하길 희망한다고 했다. 강국들 틈에 위치한 한국으로서는 그 필요성을 느낄 수 있겠지만, 과연 통일 후에 미국내에서도 주한미군 주둔의 정당성을 계속 옹호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1차적 이유다. 통일 한국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텐데, 그러면 당연히 미군 주둔 비용 부담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이는 미국내에서 주한미군 철수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 여론이 주한미군을 정당화하려면 ‘중국의 위협’을 부각시켜야 할 텐데, 과연 통일한국이 통일 과정은 물론 장래 안보에까지 관련된 중국과의 관계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주한미군을 현재대로 유지하려 할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 결국 한-미 정부는 주한미군 존재 형태의 변화를 모색할 것이다. 지난번 글에서는 ▲지상군은 주둔하지 않고 소규모 해-공군 병력이 주둔하는 동맹 형태 ▲상호 군사 접근 및 병참 지원, 사전 장비 배치, 합동 군사 훈련 등에 강조점을 두는 형식으로 재조정된 동맹 ▲소규모 지원 병력이 주둔하고, 합동 훈련과 접근이 가능한 싱가포르 모델 ▲방위 조약은 유지하되 군 병력이 주둔하지 않고 정기적 군 접근은 없지만 합동 훈련은 하는 필리핀 모델 등을 꼽은 것이다. 군사분야에서의 기술 혁명을 눈여겨봐야 한다. 현재의 기술 변화 추세라면 앞으로 반드시 군대가 현지에 주둔하는 형식만이 최고의 방법은 아닌 상황이 올 수 있다. ”

―그렇다면 어떤 모델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가.

“개인적으로는 싱가포르 또는 필리핀 방식으로 갈 것이라고 본다. 중국이 변수인데, 중국 역시 어려운 선택에 처할 것이다. 만약 중국이 너무 강도 높게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한다면, 이는 거꾸로 주한미군 주둔 형식이 강화될 것이다. 따라서 중국도 한국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균형되게 나올 것으로 보인다. 결국 중국도 아시아에서 미군이 지금과 같은 대규모 형태는 아니더라도, 어떤 형식이든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또 만약 미국의 경제 호황이 막을 내리고 한반도 통일이 이뤄진다면, 왜 당초의 목적이 사라진 주한미군이 미국민의 세금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제기될 것이다. 주한미군 등 아시아 주둔 미군 형태에도 일정한 변화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

―미국의 2000년 대통령 선거가 한창이다. 이번 선거 결과가 미국의 동북아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누가 승리하는가에 따라 다를 것이다. 민주당의 앨 고어 부통령이 승리한다면 클린턴 정부와 유사한 정책이 취해질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승리할 경우, 아시아와 미국과의 관계가 훨씬 나아질 것으로 본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클린턴 행정부를 상대하기 힘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정책의 일관성을 찾기 힘들었다는 점일 것이다. 정치적 기류의 변화에 따라 너무 변화가 많았다. 하지만 부시 지사의 외교팀들이 등장할 경우, 중국은 클린턴 정부가 내건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는 미사여구는 포기해야 할지 모르지만, 최소한 미국을 상대하는데 어디까지가 한계인지를 분명히 알게 될 것이므로, 보다 예측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이 점은 북한도 마찬가지다. ”

/dspark@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