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제1대 황제인 옥타비아누스는 BC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를 격파하고 지배권을 움켜쥐었다. 그가 로마의 정치무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12살 때 외할머니 율리아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맡으면서였다. 당시에도 추도사는 정치적 야망을 가진 젊은이에게 명연설을 익히는 기본과목이었다.

▶이보다 400년전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는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하는 펠로폰네소스 동맹 사이에 전쟁이 벌어져 27년만에 스파르타가 승리했다. 싸움은 졌지만 아테네의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의 추도연설은 후세에 고전으로 남는다. “…현재의 세대가 지금 우리에게 놀라듯이 미래의 세대도 우리에게 놀랄 것입니다.”

▶평화와 인권의 희생을 기리는 추도사는 세대를 뛰어넘는 무형의 비문(碑文)으로 남는다. 맥아더 장군의 웨스트 포인트 연설(1962)도 그 중 하나다. “여러분의 임무는 변함없이 명확하고 신성불가침의 것입니다. 그것은 전쟁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작년 9월24일 수천명의 인파가 깃발을 흔들며 9·11테러로 잃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진들을 들고 양키 스타디움에 모였다.

조지 파타키 뉴욕주지사가 연설을 했다. “우리가 희생된 분들에게 표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의는 그들의 생명을 앗아간 사악함 위에 우뚝 일어서는 것입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3월 플로리다주를 방문했다가 아프간 전투에서 희생된 미군 유가족을 위로하다가 눈물을 훔치고 만다. “여러분의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우리도 가슴이 찢어집니다.”

▶작년 1월 일본 도쿄 전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다 숨진 이수현(李秀賢)군의 동기생은 “학형의 피는 이 나라 이땅에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다시금 상기시켰다”고 추모했다. 두달 뒤 서울 홍제동 화재사고로 순직한 소방관 영웅 6명의 합동영결식에서 서울소방방재본부장은 “고인들께서 남기신 숭고한 살신성인과 희생봉사의 정신은 우리들 가슴속에 영원히 새겨질 것”이라는 추모사를 남겼다.

▶지난 1일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합동영결식에서 장정길 해군참모총장은 “하늘을 우러러 아무리 외쳐봐도 분노를 달랠 길 없다”는 추도사를 했다. 한 신문은 ‘하늘도 원통한 듯 검은 먹구름을 잔뜩 머금었다’고 전했다.

두눈 뜨고 선제공격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고혼들이었기에 희생의 숭고함을 기리는 영결식장엔 ‘분노’와 ‘원통함’이 더 컸다는 것이다. 게다가 위정자들의 눈물은 커녕, 그들의 인영(人影)조차 보이지 않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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