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철
/2000년 입국· 상지대 한의예과 재학

지금쯤 북한은 송화철이 한창일 것이다. 남한에서도 널리 시판되고 있는 노란 소나무꽃 가루말이다. 북한에서 송화는 송이·약초·해산물 등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외화벌이 수단이다. 농촌 산간 지역에서는 실제로 주민들이 송화로 생계를 잇기도 한다.

내 고향 함경북도 명천군에서는 해마다 5월부터 7월까지 송화를 채취하는 외화벌이 운동으로 전군(全郡)이 떠들썩하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소나무숲이 있는 산이면 어디든 사람천지를 이룬다. 협동농장에서 농장원으로 일했던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소나무 꽃이 피면 비닐 주머니를 가지고 산에 올라간다. 가지 끝부분 꽃술을 털어내 채취하는데 다박솔이나 애동솔(애솔)같은 키낮은 나무는 서서 채취할 수 있지만 대체로 소나무는 키가 커서 올라가거나 가지를 잘라 떨궈 채취할 수밖에 없다.

아예 통째로 베어 넘어뜨리고 타고 앉아 채취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연료나 건설목재로도 소나무가 남벌되는데 이까지 가세하니 처참할 정도로 산림이 황폐화되는 것이다.

잘라 눕혀놓는 것이 송화를 채취하기에 가장 좋은 상태인 것은 사실이다. 아름드리 나무에 올랐다가 신체를 다친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생계가 오로지 여기 달려 있으니 막기가 어렵다. 한때는 국가적으로 문제가 되어 산림보호원을 몇 배로 늘려 막아보려고 경찰순찰대까지 동원해 보았지만 배가 고픈 사람들의 필사적인 벌채를 막을 길이 없었다.

꽃이 피기도 전에 꽃망울을 따다가 집안의 아래목에 펴 말려 강제 발화시켜 꽃가루를 털어내기도 한다. 실제 북한에서 채취된 전체 송화 중에서 자연상태로 발화한 것보다 이렇게 채취한 것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수정해야 할 꽃가루까지 모조리 털어냄으로써 생태환경에 말할 수 없는 손해를 끼치고 있다. 식량난으로 껍질까지 벗겨 먹다 보니 소나무가 배겨나기가 너무 어렵다. 북한에 있을 때 나는 사람이 사는 곳이면 수십리 안팎의 소나무가 모조리 껍질이 벗겨져 앙상하게 송진을 토하며 아픔에 시달리는 장면을 보아왔다. 벗겨진 나무는 좀처럼 견디지 못하고 고사되기 일쑤다.

송화를 채취하면 국가 5호관리소, 군중외화벌이사업소 등의 수매소에 가져간다. 수매소에서는 양에 따라 일정한 돈과 식량, 물품을 내준다. 암시장에서 개인 장사꾼들에게 밀매하는 것이 훨씬 벌이가 좋다. 장사꾼들은 송화가루를 사들여 나진-선봉(나선시)지구에 가서 외국 상선과 직접 거래하거나 두만강ㆍ압록강을 건너 중국상인에게 넘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암시장이므로 잘못 팔았다가는 한 푼도 못 건지고 낭패를 보므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북한의 외화벌이란 이렇게 자연이 내놓는 최소한의 선물을 긁어모으는 것이다. 부채마(약초)든 송이든 송화든 값이 나갈 만한 산물이 나오는 철이면 산야를 가득 메우는 개미군단. 나 역시 그 군단에서 이제 갓 빠져나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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