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 김정일, 당·수령에 인민의 충성심 강조
80년대 동유럽 체제 변화에 대한 대응책


『동무들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육체적 생명을 조국통일을 위해 기꺼이 버릴 수 있을 때 정치적 생명은 영생불멸할 것이오.』

88 서울올림픽 저지를 위해 대한항공 KAL 보잉 707여객기 공중폭파 임무를 띠고 평양을 출발하는 김현희 일행에게 이틀전인 1987년 11월 10일 대남공작 담당부서인 대외정보조사부(현 35호실) 부장이 당부한 말이다.

인간의 생명을 육체적 생명과 사회정치적 생명으로 구분하고 사회정치적 생명을 위해 육체적 생명을 기꺼이 바칠 수 있어야 한다는 이 주장은 1986년 7월 15일 김정일이 정리해 내놓은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의 핵심적 내용이다. 김정일은 당중앙위원회 책임간부들과 행한 『주체사상교양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제하의 담화에서 수령-당-대중의 통일체로서 「사회정치적 생명체」개념을 제시하고 인민대중은 당의 영도 밑에 수령을 중심으로 조직사상적으로 결속됨으로써 영생하는 생명력을 지닌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루게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육체적 생명의 모체가 부모라면 사회정치적 생명의 모체는 당과 수령이라며 사람들이 육신의 생명을 준 부모에게 효도를 다해야 하는 것처럼 사회정치적 생명을 부여한 당과 수령에게 충성과 효성을 다하는 것은 마땅한 도리이며 더 없는 기쁨이고 영광이라고 역설했다.

이와 같은 김정일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 대해 황장엽 전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우리가 내놓은 사회정치적 생명체에 관한 이론을 계급주의적 전체주의와 봉건사상에 기초하여 수령절대주의를 정당화하는 방향에서 왜곡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아무튼 이 논리는 나중에 수령과 인민대중의 관계를 혈연적 연계에 바탕을 둔 「어버이(수령)와 자식의 관계」(영도자와 전사의 관계)로 치환돼 「사회적 대가정론」·「장군님의 한 식솔론」으로 발전돼 나오며, 기존의 혁명적 수령관·혁명적 수령론과 함께 수령체제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통치담론으로 자리잡게 된다.

북한에서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이 공식 제기된 것은 80년대 중반이지만 그 맹아는 50년대 말 싹트고 있었고 70년대 초부터는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1959년 9월 황해제철소 당위원회에서 「정치적 생명」에 대해 언급한 바 있으며, 1972년 9월에는 일본 마이니치신문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사회정치적 생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또한 그해 12월 사로청 간부들 앞에서 행한 연설과 이듬해 3월 남포시당 전원회의에서도 『육체적 생명보다 사회정치적 생명이 더 귀중하다』며 정치적 생명이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정일도 1974년 4월 발표한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원칙」 제8항에서 『…정치적 생명을 위해서는 육체적 생명을 초개와 같이 바칠 줄 알아야 한다』는 등으로 「정치적 생명」이라는 말을 몇 차례 언급했다.

김정일이 1986년 7월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을 들고 나온 것은 70년대 말∼80년대 초중반 개시된 중국·소련과 동유럽 체제개혁의 여파가 북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사상이념적 대응책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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