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
/서강대 교수·정치학

우선 29일의 제2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해군 장병들의 명복을 빈다. 아울러 20여명의 전상자들의 빠른 회복을 빈다. 또한 북한군을 ‘주적(主敵)’이라고 부르지도 못하게 하는 군 지휘부의 명령에 묶여 동료들의 어처구니없는 희생을 지켜보면서 발만 굴렀을 해군 장병들의 분노와 허탈감을 위로해 주고 싶다.

이번의 참담한 패전의 1차적 책임은 전투 지휘부가 져야 한다. 해군교전 규칙에는 적의 도전에는 즉각 응전하게 되어 있다. 왜 선제공격해 온 적함을 격침시키지 않았는가? 초계정은 무얼 했으며 지원 나간 전투기는 왜 구경만 했는가? 연평도의 해안포는 왜 침묵했는가? 이것이 ‘철통 같은 경계태세’인가? 적을 적으로 생각하지 않은 안이한 지휘부의 방심이 빚은 참패다.

더 한심한 것은 국방부의 후속조치다. 교전 7시간 만에 내놓은 국방부장관의 성명을 들은 국민들은 이 정부가 제 정신을 가진 정부인가 의심했을 것이다. 24명의 전사상자가 나고 해군함정이 격침 당했는데 고작 한다는 소리가 겨우 사과와 재발방지 요구인가? 지금이 정전협정 위반을 논하고 책임자 처벌이나 논할 때인가? 이번 사건을 단순한 우발사고쯤으로 보는가? 통탄할 일이다.

군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사태인식도 한심하다. 수도 서울의 코앞에서 전쟁이 벌어졌는데 외국으로 축구 구경 가겠다는 대통령이 하늘 아래 또 어디 있겠는가? 한 달 동안 온 국민이 민족적 자긍심을 담아 소리쳐 부르던 ‘대~한민국’이 한탄과 비탄의 ‘대~한민국’으로 바뀐 것을 알지 못하는가?

국가의 최우선의 임무는 국민과 국토를 외부의 무력침략으로부터 지키는 일이다. 국가가 해야 할 일 중에서 국민이 마음 놓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국방을 튼튼히 하는 일보다 더 소중한 일은 없다. 다른 모든 정책은 튼튼한 국방을 전제로 추구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도 튼튼한 안보를 전제로 햇볕정책을 펴겠다고 국민과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북한은 그동안 끊임없이 무력도발을 자행해 왔다. 잠수함으로 게릴라를 침투시켰고 반잠수정으로 남해안에 무장간첩을 상륙시켰으며 3년 전에는 연평 앞바다에서 우리 함정에 발포하였다. 이렇게 계속되는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하여 금강산 관광을 지원하고, 비료와 식량을 제공하는 등 일관되게 허리 굽혀 북한의 비위 맞추기만 해왔다. 이번 도발은 바로 정부의 이러한 대북 저자세가 가져온 예측 가능했던 사건이었다.

장병이 죽고 다친 이번 패전에 대해서도 만일 정부가 메아리 없는 재발방지 촉구 정도의 미온적 대응으로 사태를 수습하려 든다면 북한의 더 큰 무력도발을 유발할 것이 명확하다. 우리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지켜 볼 일이다.

관용이란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것이다. 힘에 눌려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은 비굴이지 관용이 아니다. 북한의 도발로 우리 장병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는데도 계속 관광지원이나 펼치고 전기공급이나 계획하고 있을 것인가? 그것이 관용이고 ‘대승적 유화정책’이라 우길 것인가?

전쟁이란 그 속성상 무릎 꿇고 빌어서 예방된 적이 없다. 전쟁은 억지 능력과 의지만으로 예방할 수 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북한이 전쟁을 못하게 막고 우리와 평화공존을 하게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진정한 남북 교류·협력을 위해서도 북한의 도발을 막을 수 있는 힘과 의지를 갖춰야 한다.

지난 4년 동안 그만큼 속았으면 북한 정권이 어떤 정권인지 알 만도 한데, 우리 정부는 아직도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 같다. 이번에 희생된 고귀한 해군장병들의 죽음으로 우리 정부가 꿈에서 깨어난다면 그들의 희생이 조금은 보상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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