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서해 도발이 있은 지 서너 시간 뒤인 29일 오후,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이렇게 말했다.
“99년 6월 서해교전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도 꽃게잡이철에 발생한 점을 감안할 때, 의도된 사건으로 보기는 어렵다.”
합참이 이미 우리 고속정 1척의 조타실이 북한의 제1격에 파괴됐다는 점 등 여러 정황을 근거로 ‘북한의 의도적 도발’이라는 점을 공식 발표했고, 이런 발표 사실을 알고 있는 이 당국자는 새로운(?) 시각에서 이 사건을 접근하려 했다.

통일부의 분위기는 그 이후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결과가 나온 뒤에도 비슷했다. NSC는 ‘북한 경비정이 선제 기습공격을 가하는 등 무력 도발행위를 자행한 것은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란 결론을 내리고, 북측에 공식사과 및 재발방지를 촉구키로 했다.

그러나 통일부장관도 참석한 이 회의가 끝난 뒤 통일부의 또 다른 당국자는 이렇게 토를 달았다. “국방부측 설명은 북한군의 발포가 의도적이라고 하는데, 전체적 측면으로는 의도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국방부가 보는 북한의 의도가 따로 있고 통일부가 보는 게 따로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헷갈리는 얘기였지만, 어쨌든 그는 “교전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 등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은 예정대로 추진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통일부가 평소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쪽에 관심을 두는 것을 탓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교류가 중요하다고 해서 북의 엄연한 도발에 대해서까지 “진짜 의도가 있었는지는…”이라며 감싸안는 일부 당국자들의 태도에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더 걱정되는 것은 이들이 지난 4년여 동안 “어떤 경우든 북을 자극해서는 안된다”는 지침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탓에, 사실을 한쪽의 잣대로 포장하는 일에만 너무 익숙해져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 權景福·정치부기자 kkb@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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