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과 현 정부는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한반도에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햇볕정책 덕분”이라고 자랑스럽게 강조해 왔다. 그렇다면 이번에 북한이 기습 선제공격으로 사실상의 전쟁행위를 도발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나마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은 것은 햇볕정책 덕분”이라고 말할 것인가.

실제로 현 정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전사자 유족들의 오열이 진동하는데도 김 대통령이 예정대로 일본으로 떠나고, 금강산 관광선이 한가롭게 북한으로 출항할 수 있겠는가. 북한의 의도적이고 중대한 공격으로 국가안보가 위협받고 있는 와중인데도 현 정부가 느끼는 분노와 위기감은 일반 국민의 그것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도 그저 ‘햇볕정책’만 있으면 걱정할 것 없다는 뜻인가.

그동안 우리가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정권에 제공한 것은 경제협력과 인도적 지원, 그리고 동포애적 ‘선의(善意)’였다. 그러면 북한정권도 긍정적 변화를 보일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 대가로 돌려받은 것은 정조준된 대포 공격이었다.

북한은 사후에도 우리 측의 군사정전위 소집 요구에 대꾸조차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남조선이 먼저 사격해 부득불 자위조치를 취했다”고 강변했다. 이것이 김 대통령이 “대화가 가능한 상대라는 것을 알고 큰 신뢰감이 생겼다”고 평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변이다. 그렇다면 현 정부는 누구로부터 어떻게 ‘사과’와 ‘재발방지 보장’을 받겠다는 것인가.

현 정부가 햇볕정책의 대원칙으로 내세워온 ‘튼튼한 안보’의 실체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평소 한반도의 ‘해상 화약고’로 여겨져 온 곳에서 국방관계자가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을 받았다”고 실토하지 않을 수 없는 어이없고 무참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현 정부의 ‘튼튼한 안보’는 햇볕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국민 기만용이었다고 해도 정부로서는 할 말이 없게 됐다. 국민들이 북한의 도발 못지 않게 걱정하는 것은 현 정부의 안이한 대북 인식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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