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머지않은 장래에 벌어질 북한 주민의 대규모 이동에 대비해야 한다. 아마도 새 정권의 일차적이고 중심적인 과제는 바로 이 같은 북한 주민의 대량탈출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우리 경제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어도, 또 북한 당국이 결사적으로 막아도, 그리고 중국당국이 강력히 대처해도 필연적으로 일어날 21세기 최초의, 그리고 최대의 엑소더스가 될 것이다.

근자에 탈북상황을 보면 몇 가지 변화가 눈에 띈다. 과거의 탈북이 예외없이 북한의 기아와 인간 이하의 조건으로부터 탈출한 것이라면 요즘은 생활환경이 나아보이는 사람들이 탈북에 가담하고 있으며 그 중에는 중국에 거주하는 이른바 「조선족」도 섞여있다는 사실이다.

일차적으로 탈북의 괄목할 증가는 북한의 식량사정 악화에 기인한다. 작년의 홍수는 북한의 식량사정을 더욱 악화시켜 WFP의 수혜자를 500만명에서 700만명으로 늘어나게 하고 있으며 WHO는 세계식량이 북한주민 760만명을 먹여살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분배의 불투명성과 비(非)효율성 때문인지 외부의 식량지원은 점차 줄어들고 있어 기아상태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근자에 탈북자들이 한국에 도착해서 토로하는 제일성이 “자녀들을 제대로 교육시키고 싶어서 왔다” “아이들을 좋은 환경에서 낳고 싶다”는 것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이제 탈북의 주요인이 단지 배고픔에 머물지 않고 보다 나은 교육과 생활환경을 향한 욕구로 업그레이드 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북한에서 그들 나름대로 먹고 살 수 있는 계층의 주민들도 당장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탈출하는 상황이다. 이런 변화는 탈북자의 숫자를 증가시킬 것이다.

탈북 증가의 또 다른 요인은 한국에서 주는 정착금이다. 지금 북한 주민들 사이에는 한국에 가면 북한에서 일생을 살아도 만져볼 수 없는 거금(약 4000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퍼져 있어 목숨을 거는 한이 있어도 한국에 가야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탈북에 따른 위험부담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도 탈북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최근 탈북자들이 북한에 송환돼도 처벌받지 않고 석방된다며 강제송환의 비인도성(非人道性)을 부인한 바 있다. 그것은 송환자 중에 목사 등 한국교회 인사를 접촉했거나 한국망명을 추진한 탈북자에 한해서는 중벌이 가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 발언이지만 어쨌든 강제송환돼도 수용소에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 탈북자를 증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베이징에서 만난 탈북관계 소식통은 최근 탈북자들을 단속하는 북한의 국경 경비병들조차 굳이 탈북을 막지 않을 뿐 아니라 적당한 대가에 따라 탈북을 용이하게 해주고 있다고 전하면서 조만간 경비병들이 탈북에 가담하는 사태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것들이 사실이라면 이제 북한 주민들은 반드시 목숨을 걸지 않고서도 일단 북한을 벗어나 중국이라는 중간지대에 머물면서 상황을 보아 한국으로 옮겨갈 수 있는, 보다 쉬운 조건을 맞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관계자는 탈북자가 하루 몇 백명씩 크게 늘면 한국으로서도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중국이 탈북자들을 막아주는 것은 한국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했다. 그들의 「선의」를 믿을 이유는 없지만 어쨌든 중국 당국도 이제 탈북이 일상화되고 대규모화할 수 있음을 부지불식간에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탈북의 대의(大義)는 북한정권이 더 이상 국민을 먹여살리고 인간답게 살게 해주지 못하는 데 따른 국민의 소극적 저항이라는 데 있다. 혹자는 북한정권을 도와 주민을 살게 하자고 주장하지만 북한은 체제를 유지하며 개혁·개방을 수용할 단계를 이미 넘어섰다. 문제는 우리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오면 받아야 한다. 그것이 어떤 부작용과 주름살을 가져오든 우리는 비용을 따질 위치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통일이며 통일은 절대로 덤으로 오지 않기 때문이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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