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양국이 23일 ‘베이징 한국 총영사관 사건’의 처리문제에 대해 합의한 것은 이 문제로 더 이상 양국관계의 악화를 원치 않는다는 의지 표현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임신부를 포함한 26명의 탈북자가 한국으로 오게 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이번 합의내용은 한국 정부의 대(對)중국 저자세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으로, 국제 관례나 한국민의 정서에 비추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중국 경찰이 한국 총영사관에 무단진입해 탈북자를 강제 연행하고, 이에 항의하는 우리 외교관을 폭행까지 한 것을 두고 ‘상호유감’을 표명한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중국은 우리 외교관들이 탈북자의 이송을 방해했다고 주장하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외교관은 주재국의 어떤 불법행위에도 가만히 손놓고 있어야 한다는 것인가. 나라의 주권과 존엄이 걸린 문제에서마저 저자세로 일관한 현 정부의 외교역량은 국민적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더욱 문제인 것은 “외교공관이 탈북자의 탈출행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중국의 입장에 대해 한국정부가 이해와 공감을 표명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향후 탈북자의 진입을 막겠다는 뜻은 아니다”고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지만,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앞으로 중국이 탈북자의 공관진입을 막기 위해 더욱 무리한 방법을 동원해도 우리로서는 ‘이해와 공감’을 보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번 협상결과는 나라의 체통을 크게 실추시켰을 뿐 아니라 중국 내 탈북자 문제에 대한 한국정부의 입지를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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