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
피랍·탈북자 인권과 구명을 위한 시민연대 대표·목사

정부는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법’ 시행령 개정안을 심의하고 탈북자들에게 지원되는 정착금을 탈북자와 그 직계가족의 재산 및 사회적응 상태, 정착지원 시설에서의 위반행위 등을 고려해 최대 50%까지 삭감할 수 있도록 의결했다.

이에 대해 한 당국자는 “최근 들어 국내에 들어오는 탈북자들이 급증함에 따라 재정부담을 덜고 탈북자 간 정착지원금 격차에 따른 위화감 조성을 막는 한편, 탈북자들의 한국사회 적응을 적극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음날에는 “탈북자들의 폭행·교육이탈 등의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며, 여러 사례를 놓고 볼 때 일탈행위 정도에 따라 5분의 1 내지, 3분의 1 가량이 삭감될 수 있다”고 설명이 달라졌다.

탈북자 대량 유입에 대비한 정착금의 현실적 조정도 아니고 ‘말 안 듣는’ 탈북자들에 대한 일종의 ‘벌칙’으로 삭감안을 내놓았다면 그 이유가 너무 옹색해 보인다. 탈북자들의 망명을 차단하고 탈북자들의 ‘자질’과 ‘인격’을 문제삼아 이들에 대한 국민적 회의감을 확대시키려는 목적이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탈북자들은 폐쇄적인 체제하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제도에 적응하기 힘들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적응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부작용도 자주 지적돼 왔다. 그러나 정책 당국은 탈북자 급증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수용능력을 이유로 정착교육 기간을 6개월에서 3개월, 최근에는 2개월까지 단축시켰다. 그러다가 급기야 초기교육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점을 ‘정착금 삭감’이라는 위협적인 수단으로 해결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2개월의 교육기간이 탈북자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갈 준비를 하기에 턱없이 짧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교육 부적응자를 정착금 삭감으로 처벌하려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적인 옹졸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정부의 탈북자 정착교육이 실패하고 있음을 자인하는 것일 뿐이다. 또한 탈북자의 급격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장기적 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직무유기를 시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최근 “탈북자들이 국내로 밀려들어오고 있어 필요하다면 제2의 탈북자 정착지원시설을 임대해서라도 감당해야 할 상황”이라며 안성의 하나원에 이어 경기도 지역에 제2의 탈북자 정착지원시설을 임대,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급박한 상황에 처해서야 손을 쓰는 이런 방식은 그야말로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는다. 탈북자들을 성별, 연령 구분없이 2개월여 한 곳에 수용했다가 내보내는 식으로는 앞으로의 대량 탈북자 유입 사태를 감당할 수가 없다. 짧은 교육 기간에 만나 곧 바로 결혼했다가 파경을 맞는 탈북자 부부도 적지 않다고 한다.

정부는 탈북자 정착교육과 지원에 있어 한계를 솔직히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공청회를 열고 민간단체, 종교단체, 탈북자단체 등이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현재 국내 탈북자는 모두 2000여명이다.

이 정도 규모도 정부가 제대로 감당치 못한다면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정부의 합리적인 중장기 계획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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