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이나 규범은 국제사회의 질서를 규율하는 기본 틀이다. 군사력을 갖춘 주권국가들의 대외적 행태에 대한 최소한의 룰이 무너진다면 국제질서는 야만이 지배하게 된다. 지난 13일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 영사부(총영사관)에서 우리는 국제협약과 관행 모두를 무시한 야만적 행태를 목격했다.

중국 공안당국이 탈북자를 잡아가기 위해 한국 외교공관에 침입한 것도 모자라 한국 외교관들을 향해 폭력까지 휘두른 것은 한국 주권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다. 외교공관에 대한 ‘불가침(Inviolability)’은 국제사회가 수백년 이상 지켜온 최상위의 외교특권이다. 우리가 흔히 ‘치외법권(治外法權)’이라는 말과 혼용해 온 ‘불가침권’은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도 명시돼 있는 절대적 권리다.

중국정부나 공안당국이 이 같은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이날 한국 총영사관에 침입한 중국 공안들은 평소 이곳 경비를 맡아 온 사람들로 중국 외교부 소속이다. 결국 중국정부는 계속되는 탈북자들의 중국 내 외교공관을 통한 망명행렬에 쐐기를 박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한국정부의 대응도 이번 사태가 결코 우발적인 일이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중국측의 분명한 해명과 사과, 재발방지 약속이 필수적이다. 그것은 요식적인 말이 아니라 중국 최고위층의 진심이 담긴 사과여야 한다. 벌써부터 우리 정부 내에서 ‘한·중 관계를 고려한 신중론’이 제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감정이 앞선 대응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장기적인 한·중 관계의 틀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한국 외교의 단호함을 보여줄 때다. 중국이 외교특권마저 무시하는 폭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껏 한국이 ‘만만한 존재’로 보였기 때문이다. 자국 외교관이 폭행당한 사건에서까지 할 말을 제대로 못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국제사회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것인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정부는 중국측과 탈북자 문제에 관한 포괄적인 협의에 착수해야 한다. 탈북자 문제는 국제적인 인권문제이자 동북아 질서를 요동치게 할 수도 있는 평화와 안보에 관한 이슈이기도 한 만큼 한·중간, 더 나아가 국제사회 전체의 논의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언제까지 심지가 타 들어가는 시한폭탄을 그대로 방치할 것인가.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