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時旭
/언론인·성균관대 겸임교수

북한당국이 남한의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려 하고 있다고 비난한 한나라당의 성명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주목거리다. 한나라당은 이 같은 조치가 연말 대선정국에 ‘신북풍’이 불어오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고 있는 데 반해 민주당측은 한나라당의 이 같은 움직임이 대선전략을 보혁구도로 몰아가려는 전략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데올로기로 분단된 한반도에서 지금 특이한 정치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회창 낙선 공작 나선 평양당국

지금까지의 여러 징후로 미루어 보면 북한당국이 남한의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고 작전을 벌이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북한당국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낙선을 위해 비방전을 부쩍 강화하고 있다.

그것이 관영매체를 통한 선전선동활동에 그치는지, 아니면 그 이상의 공작활동도 벌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북한당국은 지금까지 기회 있는 대로 이 후보를 비난해 오다가 지난 4월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남북공동선언 제2항에 관련된 그의 발언 이후에는 더욱 격렬해졌다.

평양당국은 지난달 30일에는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문제의 제2항이 연방제 합의라던 종래의 주장을 완전히 뒤집어 더욱 관심을 끌었다. 그들은 이 조항이 “서로의 통일방안의 공통점을 인식한 데 기초하여 그것을 적극 살려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했다는 의미”라고 주장하면서, 이 후보가 이를 통일방안의 확정으로 단정하여 이를 폐기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통일문제의) ‘초보의 초보도 모르는 무지의 표현’이라고 매도했다.

이 같은 북한당국의 반응은 사실 초점이 빚나간 게임이다. 이 후보는 이 조항의 무조건적인 폐기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북한이 계속 이를 연방제의 합의라고 주장하는 경우 이 조항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한 것뿐인데도 북한측은 이 후보의 언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공세를 벌인 것이다.

다음으로 주목되는 것은 북한당국이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대표에게 보이고 있는 우호적 태도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달 중순 박 대표가 방북했을 때 극진한 대우를 한 데 이어 지난달 31일에는 북한의 아태평화위원회를 시켜 금강산댐의 물을 뺀다는 것을 그에게 통고해 주었다.

이것은 박 대표를 남한 보수세력의 대표로 만들어 이 후보를 고립시키려는 속셈일 것이다. 앞으로 박 대표가 대통령 후보로 나올 경우 영남표를 잠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이런 작전은 김정일의 멋진(?) 게임이 될 수도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10월 깜짝쇼’ 가능성을 말한다. 김정일의 답방을 의미한다. 이런 주장은 “앞으로 남북대화 하나만 성공시키면 나머지는 다 깽판쳐도 괜찮다”고 말한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발언 때문에 그럴듯하게 보인다.

김정일 자신도 박근혜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적절한 시기에 꼭 (남한 답방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했다”는 것이어서 10월 깜짝쇼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이런 관측이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는 오직 남북한의 몇 사람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남북문제를 대선에 이용 말아야

지금까지의 남북관계는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김 대통령과 김정일 간의 정치게임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통일이라는 목적이 아무리 숭고하더라도 이를 구체적으로 이룩하자면 치열한 정치게임과 외교게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김 대통령이 임기를 8개월 남겨놓고 자신에게 노벨평화상의 영광까지 준 남북대화에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렇게 되면 노 후보 말대로 다른 분야는 깽판이 되어도 대선에는 괜찮을지 모른다.

그러나 게임은 공정해야 한다. 대선을 유리하게 할 목적으로 남북문제를 원칙 없이 서두르면 그것은 다른 이야기가 된다. 공정한 게임도 아닐 뿐 아니라 국민들이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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