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후퇴 때 엄마를 따라 같이 가겠다면서 울며 겨울 땅을 뒹굴던 아홉 살짜리 딸아이. 엄마는 보름 뒤에는 반드시 다시 돌아오마 약속하고 또 약속했었다. 그러나 그 후 50년의 세월은 그렇게 흐를 수밖에 없었다.

모녀가 서로를 다시 부둥켜안고 울었던 지난주, 우리 모두는 그 모습을 눈물로 지켜봤다.

지난 50년의 세월을 두 사람은 결코 제정신을 갖고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는 엄마대로, 딸은 딸대로, 기쁜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거나, 좋은 음식을 앞에 두었거나 날씨가 춥거나, 언제나 그 헤어질 때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고, 목이 메었을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정신적 충격과 한을 가진 사람들이 정상적인 정신 심리 상태를 가지고 살 수 없다. 그 모녀만이 아니다. 이번에 상봉을 한 200가족 모두가, 1000만 이산 가족들 모두가, 그리고 분단사회에서 살아온 우리 모두가 그런 충격을 겪은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남·북한의 분단은 단순히 국토의 분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남북 분단이란 남과 북 사람들 모두의 정신에 큰 상처를 입히고, 정신을 분단해 놓았다.

인간의 뇌는 좌뇌와 우뇌로 나뉘어 있고 그 각각은 고유의 독특한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뇌의 더 큰 신비는 그 좌뇌와 우뇌가 가운데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어 서로의 정보처리와 기능이 유기적으로 합쳐져 최종적인 정신 기능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좌뇌와 우뇌 그 자체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더라도 그 연결 부위(교련·교련)를 잘라놓게 되면 인간의 정신은 황폐해진다.

지난 50년간 한국인은 자신들이 그것을 의식하였든, 못하였든 간에 분단으로 인해 ‘정신의 교련 절단’상태였고, 그에 따른 극심한 정신적 황폐를 보여왔다. 남한에서는 그 황폐함이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의 돈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났다. 빠른 경제성장과 함께 무조건 돈을 벌고 보자는 심리, 돈만이 모든 것을 해결하고 평가한다는 식의 황금만능주의 등은 우리가 얼마나 돈에 집착하여 살아왔는가를 보여준다.

반면 북한에서는 공산주의 틀 속에서 정치사상적인 논리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교조적 통치이념과 그에 따른 전 인민들의 사상적·정신적 획일화 등은 북한 사람들이 얼마나 사상에 집착하여 살아왔는가를 보여준다.

왜 이럴까? 왜 남·북한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극단적이고 비정상적인 정신과 행동의 특징을 보이는 것일까? 우리는 그 일면을 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통하여 봤다. 즉 우리는 너무도 큰 정신적 상처와 한을 가지고 있고, 그것에 의하여 이런 극단적인 집착의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다.

남·북한의 통일은 결코 전쟁 방지와 경제적 목적만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도 통일은 우리 민족이 근본적으로 이 황폐해진 병적 상태에서부터 치유되어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50년 만에 다시 부둥켜안고 우는 모녀의 모습은 우리가 둘로 갈라져 각각 나라를 이루어 마냥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민족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이와 동시에 우리에게는 그러한 통일이 가능함을, 그리고 반드시 있어야 함을 보여주었다. 우리 앞에 놓인 이 통일은 결코 ‘땅의 통일’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갈라지고 상처 입은 우리 민족의 정신을 치유해 다시 이어 놓는 ‘사람의 통일’ 문제인 것이다.

/ 전 우 탁 연세대의대 교수·사회정신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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