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김한미(2)양 가족의 미국망명 요청을 처리하는 미국 국무부의 태도를 보면, 탈북자 인권문제에 관한 미국의 기본 입장은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선양(瀋陽) 주재 일본 총영사관에 진입하려다 중국공안에 의해 강제로 끌려나오는 등 우여곡절 끝에 한국행에 성공한 김양 가족이 당초 원했던 망명지는 미국이었다.

미국 국무부는 이들의 망명요청 서한을 접수하고도 이를 부인하다, 나중에 편지를 전달한 미국 ‘디펜스포럼’이 문제를 제기하자 ‘행정착오’로 주무부서에 접수되지 않았다고 둘러대는 등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보였다.

국제인권의 수호자로 자처해온 미국이, 정작 탈북자 인권에 대해서만은 이중 잣대를 갖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고 있던 터에, 미 국무부 바우처 대변인은 29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 법에 따라 미국 영토나 혹은 국경에 와서 망명신청을 하는 경우에만 허용을 검토할 수 있다”면서 “해외에 있는 미국 대사관이나 시설은 미국 영토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미국은 처음부터 김양 가족의 요구를 받아줄 의사가 없었음을 스스로 밝힌 셈이다.

바우처 대변인의 설명이 미 국내법과 ‘외교적 비호권(庇護權)’에 관한 국제규범에 따른 것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이것은 미국의 의지에 달린 문제다. 미국은 지난 89년 톈안먼(天安門)사태 후 베이징 주재 미국 대사관에 들어온 중국의 천체물리학자 팡리즈(方勵之) 박사를 1년 이상 보호하다 영국으로 망명시키기도 했다.

지금 부시 행정부의 고위직에 있는 인사 중 몇몇은 재야시절 “탈북자 인권 문제에 소홀하다”고 당시 클린턴 행정부를 비판하던 사람들이다. 또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 인권문제를 강도 높게 비난해온 부시 행정부가 정작 그 체제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어서 뛰쳐나온 탈북자들의 요구에 귀기울이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의 비난을 자초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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