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평길
/연세대 교수·남북한 군사

모든 조직은 추구하는 목표가 있고 상대가 있다. 기업은 고객을 매료시키는 주력 상품으로 경쟁사를 제압하고 복싱 도전자는 챔피언인 방어자를 무너뜨리려 하며 한국 축구대표팀은 폴란드 대표팀을 맞아 16강 진출 서전을 장식하려 한다.

외국의 군사침략을 방어하고 승리해야 하는 군대는 적 아니면 아군이라는 군 특유의 심리로 경쟁국 군대를 군사용어로 주적(主敵·main enemy)이라 한다. 주적 군은 한 나라 국방안보에 결정적 위협(major threat)을 주는 상대국의 군을 의미하기 때문에 주적을 갖지 않는 국가의 군은 없다.

주적은 현재에 분명히 확정된 주적과 앞으로 나타날 수 있는 잠재 주적으로 나눌 수 있다. 의회에서 가결하고 대통령이 공포하는 선전포고에서 밝히는 적군은 분명한 현재 주적이고, 의회에서 전쟁 결의를 하거나 군사예산을 승인하여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과정에서 표명된 적군도 명확한 현재의 주적으로 본다. 또 은밀히 극소수 군 수뇌부나 군 통수권자만 문서상에 기재된 양해 사항으로 인지하고 있는 적군도 현재의 주적이다. 완벽한 작전, 강력한 무기체계, 실전 같은 훈련으로 다른 국가의 군대가 전쟁도발을 포기하게 하는 전쟁 억지력을 향상하는 것이 군 임무라면 주위 모든 국가의 군대가 유사시에는 가상 적국의 잠재 주적이 될 수 있다.

미국은 건국 이래 5차례의 전쟁선포를 하였는데 스페인과 멕시코를 상대로 한 영토확대 전쟁과 1·2차 세계대전에서 선전포고로 공식적 주적을 분명히 하였고 국회에서 승인한 국방예산으로 대통령이 전쟁을 수행하면서 적군을 분명히 한 전투사건은 건국 이래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때까지만 해도 364회나 된다 한다.

러시아군 견제가 아직도 나토군의 핵심 작전개념이고, 메이지유신 시절 일본의 방위요강에는 육군의 주적을 러시아군, 해군의 주적을 미군으로 명시했었고 지금도 일본 북해도방면군은 미사일과 전투기의 발진 방향을 러시아 연해주와 사할린 북부로 겨냥하고 있으며, 미 7함대의 주적 중 하나는 블라디보스토크에 기지를 둔 러시아 태평양 극동함대이다.

한국은 6·25전쟁 다음 날인 26일 수도 사수 국회결의에서 인민군 격퇴의지를 천명하고 이승만 대통령도 북한 괴뢰군을 섬멸해야 한다고 공식 발표하고 그 다음 날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군을 침략자로 규정하여 파병결의를 하였다. 그렇게 북한군을 주적으로 하는 유엔군에 한국군은 핵심 구성군으로 되어 있다.

북한 헌법과 노동당규 제1조에 북한지역과 조선 반도전체를 사회주의화한다고 규정하고 북한군은 이런 노동당규를 총·폭탄으로 사수하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따라서 국내외 정치·군사·법제도면에서 북한군은 한국군의 명확한 주적이다. 또한 기업경영면에서 고객과 시장이 분명해야 생산할 제품의 질과 양이 결정되듯이 군사전략 면에서 주적 군 상대가 분명해야 군의 구조, 무기체계, 군사작전, 전장영역이 결정되고 군 장병도 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고 전투대비를 함으로써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 형성되게 마련이다.

현재 한국군의 작전 개념은 북한군을 상대로 짜여 있다. 그런데 최근 북한군이 한국군의 명확한 주적임을 국방백서에서 삭제하려는 정치 논리가 개입하고 있다. 그런 정치논리에는 남북 군사통합 완결로 주변국 다자간 안보협력체제에서 평화통일을 양해하고 현 징병제도가 폐지되어 휴전선이 관광지로 활용되는 선행조건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국방백서에 규정한 북한군 주적개념은 평화통일을 위한 북한정권과의 회담에서 효과적인 협상 카드로 사용할 수 있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냉전시대를 거쳐 남북화해의 시대를 여는 현 시점까지 한국에서, 북한군이 괴뢰군에서 인민군·북한군으로 유연하게 호칭이 변모되는 것은 우리의 국력, 우리 군의 전쟁 억지력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군은 현재 15조원의 예산과 69만 병력, 한반도를 담당할 수 있는 국산 미사일, 신형 전투기 도입, 이지스 전함건조능력, 학계와 연구소의 전략 유도무기 개발능력이 밑받침되고 있다. 기업을 시장경제논리에 맡기는 것처럼 주적 문제도 성급한 정치논리 개입보다 군사전략차원에서 다루도록 당분간 전문 직업군에 맡겨 두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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