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상
/(사)한국이웃사랑회 기획실장

민간단체(NGO)에서 대북지원 일을 맡아 하면서 북한을 10여 차례 다녀왔다. 북한을 방문하는 까닭은 주로 우리가 지원한 물품이 제대로 쓰여지고 있는지 모니터링을 하기 위한 것이다.

오가다 보니 어느덧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무척 정겹게 느껴진다. 방문기간 중 일요일이면 우리 일행은 평양의 봉수교회를 찾는다. 목사는 오늘 이 자리에 남한에서 누가 새로 참석했는지 알리고 예배를 시작한다. 예배가 끝나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기도 하고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노래를 부르며 헤어지기도 한다.

유엔 마크가 달린 차를 타고 오는 유엔기구 직원들, 평양에 사무소를 둔 외국 민간단체 관계자 또는 평양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이곳에서 만난다. 이들을 안내한 북한 안내원들은 예배 내내 그들에게 통역을 해준다. 이곳은 어느덧 우리의 중요한 사교장소가 되고 있는 듯하다.

평양에 소속단체 대표로 혼자 상주하고 있다는 한 스웨덴 민간단체 활동가는 나의 명함을 보고 『1994년 자이르 고마 난민촌에서도 이 단체활동가를 만났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에는 일행 중에 천주교 신자가 있어 처음으로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신부는 없었다. 평신도 회장이 미사를 집전하고 있어 신부만이 할 수 있는 성체성사 등은 생략되었다. 남한에서 신부가 방문하면 직접 미사를 집전한다고 한다. 이곳에서 유엔개발계획(UNDP) 요원들을 만나기도 했다.

북한에서 우리를 가장 반기는 사람들은 역시 우리와 함께 하는 사업장의 북한사람들이다. 우리 단체는 1998년 젖소 200마리를 지원한 후 4개의 목장에서 젖소를 길러 주변 어린이들에게 우유를 공급해왔다. 벌써 5년이 가까워 첫 지원한 젖소가 손자 손녀를 보기도 했다. 목장에 가서 젖소를 보고 친구처럼 반가워하는 우리 일행을 북한사람들은 무척 재미있어 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보낸 젖소들이 북한에서 크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족을 만난 듯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주민들은 이제 동업자가 된 느낌이다. 옥수수, 감자, 고구마, 머루, 사과, 그리고 우리 젖소에서 짠 우유 등 농장 주민들이 대접해 주는 음식에 마음부터 푸근해 진다.

서둘러 떠나 올 때면 그들은 가방 불룩히 뭔가를 넣어준다. 옥수수가 가득 든 가방을 메고 나서는 내 모습을 보고 뒤에 남은 그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른다.

우리에게는 지난 50년의 아픔과 벽이 있다. 그 아픔과 벽은 사랑을 전하는 일을 힘들게 하지만 결국 사랑은 아픔도 상처도 치료하고 벽을 허물 수 있는 가장 좋은 약이다. 북한의 목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일꾼들, 육아원(고아원)에서 정성껏 고아들을 키우는 사람들, 병원 원장님의 환한 인사. 우리가 만나는 북한에서 가장 반가운 사람들은 역시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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