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석연찮은 이유를 들어 연례 국방백서 발간을 격년제로 바꾸기로 했던 국방부가 끝내 백서발간을 무기한 연기했다. 국방부는 또다시 이런저런 해명을 내놓고 있지만 이것이 백서의 「주적(主敵)」 개념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안팎으로 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아야 하는 국방부의 처지도 안쓰럽지만, 이 정부가 언제까지 이렇게 북한 눈치보기와 끌려가기를 계속할 것인지 한심스럽기만 하다.

국방백서는 국제 안보정세와 우리 국방정책, 한국군의 무기체계 등을 담은 일종의 종합보고서로, 이를 통해 국민의 안보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발간의 목적이다. 그런데 내용중 극히 일부인 「주적」개념을 가지고 북한이 트집을 잡는다고 해서 발간 자체를 포기해버린다면 이같은 발간 목적은 다른 어떤 수단으로 충족시킬 것인가?

국방부가 이번에 발간을 무기연기하면서 내놓은 설명은 『「국민의 정부」를 마감하는 해이므로 국방업무 실적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결산하는 형태로 발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라는 것이다. 아마 이런 발표를 하는 국방부 스스로도 멋쩍다고 느낄 것이다.

국방백서에 「주적=북한」이라는 명시적인 표현을 꼭 넣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물론 이론(異論)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이론은 우리가 내부적으로 충분히 토론을 거쳐 반영할 것이 있으면 반영하는 것이 주권국가로서의 의연한 자세다. 북한이 문제삼는다고 적십자회담 대표와 각료를 경질하고, 예정돼있던 군사훈련을 축소하고, 대국민용 백서발간까지 포기하는 이해할 수 없는 저자세를 도대체 언제까지 고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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