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민

지금 동중국해에는 작년 말 일본 해상보안청 함정의 포격을 받고 침몰한 괴선박 인양 작업이 한창이다. 해저 450m까지 잠수함 구조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이 90여m 해저에 가라 앉아 있는 괴선박을 인양하는 데 기술상 문제는 전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망망대해에 점 하나와 다름없는 자그마한 정체불명의 선박을 어떻게 탐지하고 추적하게 됐는지 가공스런 일이다. 총체적인 정보획득 능력이 없으면 안보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현실을 절감케 한다.

그 과정은 이렇게 전개됐다. 미국 국방부는 작년 12월 8일 KH-12 군사정찰 위성으로부터 일본 해역으로 접근하는 정체불명의 선박을 발견했다는 정보를 접수하고 즉시 오키나와 공군기지에서 전자정찰기 EP-3E를 발진시켜 정밀 수색에 나선다. EP-3E는 지난해 중국 하이난섬에 불시착한 것과 같은 형의 항공기로 상대방 통신을 감청하거나 전자교란을 하는 역할을 한다.

정체불명의 선박이 무선교신을 스스로 봉쇄하고 있을 경우, 수색·발견은 레이더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괴선박은 12월 18~19일 이틀간 무선교신을 행함으로써 전자정찰기가 이를 포착하게 됐다. 일본도 이미 기카이지마의 통신감청 시설로 괴선박의 무선통신을 감청하고 있던 상황이라 즉시 대잠초계기 P-3C를 발진시켜 정확한 위치를 파악, 격침하게 된 것이다.

일본 방위청은 1997년 초 내국(內局)·통합막료회의·육상·해상·항공자위대의 정보관련 부문을 통합한 ‘정보본부’를 발족, 정보능력을 강화했다. 주목할 것은 위성정보를 처리하는 화상부(畵像部)를 신설한 것인데 그만큼 위성정보는 21세기 안보에 필수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통신감청을 위한 ‘전파부’인데 1300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일명 “코끼리 우리(Elephant cage)”라는 통신감청 시설을 이용해 일본열도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다.

1998년 8월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실험 당시, 미사일 궤적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이지스 순양함 미요코우(みょうこう)의 강력한 레이더 덕분이었다. 일본은 이 함정을 4척이나 갖고 있다. 한국은 1척도 없다. 잠수함을 찾아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대잠초계기 P-3C도 일본은 100여대나 보유하고 있어 세계에서 작전영역에 비해 가장 많은 대잠초계기를 갖고 있다. 반면 3면이 바다인 한국은 10대 미만에 머물고 있다.

정보력이 궤멸적 화력보다 중요하다는 사례는 미·중 국교정상화 과정에서도 분명히 증명되고 있다. 1999년 1월 10일 미국에서 공개된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회화록’에는 키신저가 대중교섭 과정에서 미 군사위성이 수집한 소련군 동향에 관한 정보의 제공과 미·중 수뇌간의 핫 라인(Hot Line) 개설까지 내놓고 중국측에 관계 정상화를 요구하는 비화가 실려 있다. 1969년 우수리강 중·소 국경분쟁에서 참패한 중국은 키신저가 보여준 당시 위성사진에서 정보에 어두운 중국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절감하고 국교 정상화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정보력은 군사력이라는 사실을 뼛속 깊이 느끼는 대목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위성에 의한 정보수집 능력이 2004년이면 상당히 높아질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아리랑 2호는 공간 해상도가 1㎡급으로 정보획득에 충분히 활용될 수 있어 기대가 크다. 그러나 인공위성만 갖고는 안 되기에 이지스 구축함, 전자정찰기, 공중 조기경보기, 대잠초계기 등의 확충이 시급하며 이를 통합하는 정보군의 구축이 절실하다.
/ 한양대교수·국제정치학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