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이산가족 교환방문은 1985년보다 규모도 크고 조직도 잘 돼 국내외에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행사가 끝나자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고, 정부는 이 때문에 ‘교환방문’보다 ‘면회소’에 중점을 두어 판문점, 금강산, 철원 등을 면회소 장소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필자는 금강산이니 철원이니 하면서 우왕좌왕할 것이 아니라 보다 확고한 자세로 판문점을 상봉장소로 선정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합리적이며 정당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첫째, 판문점에는 이미 이산가족 상봉에 필요한 시설들이 잘 갖춰져 있다. 판문점 남쪽에는 1998년 신축된 1400평이 넘는 ‘자유의 집’이 있다. 이산가족 상봉을 예상해 이 건물에는 우편물교환소, 환전소, 면회소, 대기소 등까지 준비돼 있다.

북쪽에도 ‘판문각’과 ‘통일각’이라는 큰 건물들이 있다. 북한도 이를 이용할 수 있다. 판문점에는 또 직통전화도 있고, 서울~평양간의 광케이블도 이곳에서 연결돼 있다. 게다가 14일부터 재가동 중인 남북연락사무소에 연락관이 상주하여, 언제라도 이산가족들을 돌봐 줄 수 있는 체제도 갖춰져 있다.

판문점은 휴전선 상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정전협정상의 중립지대로 안전을 보장받고 있다. 휴전선 155마일에서 유일하게 안전과 평화가 보장되는 곳이다.

둘째, 무엇보다 판문점의 가장 큰 장점은 거리가 가깝다는 것이다. 때문에 교통이 편리하고 이산가족들의 숙박과 왕래가 용이하다. 남북을 가리지 않고 한반도의 서부 지역은 인구가 밀집돼 있다. 당연히 이산가족들도 서부지역에 더 많이 산다. 판문점이 최적지라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남한도 북한도 비용이 많이 들면 다수를 만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셋째는 북한도 판문점 면회소를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과거 적십자 본회담 장소로 판문점 개최를 제의한 바 있다. 70년대 초 적십자 예비회담 회의록을 보면 북한은 판문점이 지닌 교통·통신과 지리적 여건, 각종 기존시설의 장점과 편리함을 극구 찬양, 이곳을 최적의 ‘만남의 장소’라고 주장했었다.

지금 상황은 남북 정상이 6·15선언을 발표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서울방문을 약속,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판문점 면회소 설치에 동의함으로써 남쪽 국민에게 관계개선의 성의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 위원장 말대로 북한 군부내에 일부의 반대가 있을지 모르나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경제 우선 노선’을 추진하려 한다면 그는 당연히 한반도 서부지역을 개방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북한은 현대에 개성 관광단지와 공단설치를 약속하고 있다. 판문점 면회소 설치를 거부할 이유가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본 대로 이산가족 면회소는 판문점에 설치하는 것이 최적격이다. 관광선을 타고 금강산까지 상봉하러 가는 것은 북한에는 이득이 될지 모르나, 남측 이산가족들에겐 경제적으로 너무 큰 부담이 된다. 철원을 판문점처럼 ‘군사적 중립지대’로 만드는 작업 또한 미국의 동의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왜 쉽고 비용이 적게 드는 방식을 놔두고,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드는 길을 굳이 선택하려 하는가.

/ 김 달 술 전 남북적십자회담 대표·남북회담사무국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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