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저지에 사는 교포 남신우(南信祐·61)씨의 목소리는 14일 가라앉아 있었다. 미국 정부가 중국 선양(瀋陽) 주재 일본 총영사관에 진입했다가 붙잡힌 탈북자들인 장길수군 외가친척 일가족 5명의 미국 망명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는 보도를 전해들었기 때문이다.

이 가족의 친척인 남씨는 전화를 건 기자에게, “이번 망명을 위해 벌써부터 준비했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건축설계 회사 ‘NKP’ 대표인 그는 “그들이 미국에 오면 정착을 도와줄 여력이 충분히 있다”고도 했다.

그는 지난 8일 디펜스 포럼 재단을 통해 이들 5명을 본인들 의사대로 미국으로 데려와 달라는 서한을 미국 국무부에 보냈다. 그러나 이날까지 국무부로부터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미국 정부는 선양 주재 미국 총영사관에 들어갔던 탈북자 3명의 미국행(行) 역시 거절했다. 이들은 14일 싱가포르를 거쳐 한국에 입국했다.

미국이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미국은 그동안 명백한 ‘정치적 망명자’가 아니면 ‘경제적 난민’은 받아들이지 않아왔다. 쿠바 난민이나 보트 피플도 거부했던 미국이다. 부시 행정부는 또 미국 망명을 바라는 탈북자들이 속출할 경우, 중국과의 관계나 미·북 대화 재개에 부담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동안 탈북자 문제만 불거지면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 “북한으로 돌려보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더구나 미국은 ‘인권’과 ‘자유’의 지구촌 전도사를 자처해왔다.

미국의 곤혹스런 처지를 전혀 모를 바는 아니지만, 입으로만 인류애를 외치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실제로는 귀찮은 일에서 발 빼려는 것 아니냐”는 남씨의 항변에, 미국 정부는 최소한 성실한 답변이라도 해야 한다.
/ 朱庸中·워싱턴 특파원 midway@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