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손님에게 내놓는 흔히 먹지 못하는 이색적인 식품인 것 같다. 1870년 보불전쟁(보불전쟁)으로 파리가 포위당했을 때 카페의 크리스마스 특식으로 당나귀 머릿고기가 나왔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파리에 갇혀있던 작가 빅토르 위고의 ‘공포의 해’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말고기 쥐고기 당나귀고기도 먹었다. 파리가 물 샐 틈 없이 포위되자 우리들의 위 보따리는 노아의 방주(방주)에 몰려드는 짐승처럼 가릴 수가 없었다. ’
아브라함이 신의 계시를 받고 늦둥이 이삭을 희생하고자 땔감과 더불어 싣고 간 것이 당나귀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날 때 그 곁에 있었던 당나귀요, 예수 그리스도가 예루살렘 입성 때 타고 든 것이 당나귀였다. 미구에 나타날 메시아(구세주)도 당나귀 타고 나타날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에서 선인이 타고 다니는 것이 당나귀다. 장과로(장과로)는 당나귀를 종잇장처럼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었다가 필요하면 이를 펴 물을 뿜으면 당나귀가 되곤 했다 한다. 문화권에 따라 당나귀 이미지는 이렇게 좋기도 하지만 나쁘기도 하다.
학대받는 신데렐라의 외투는 당나귀 가죽이다. 곧 조악(조악)의 상징이다. 대체로 아둔과 우직, 무능의 상징이기도 하다. 소금짐 지고 가던 당나귀가 물에 빠져 짐이 가벼워지자 솜짐 지고 가다가도 일부러 물에 빠지는 등의 이솝 이야기가 당나귀 이미지를 흐려놓았을 것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장돌뱅이로 떠돌며 세월에 찌들어 초라하게 늙어가는 허생원의 인생을 당나귀와 동일시한 것 등 찌든 밑바닥 인생의 상징이기도 하다. 북한에서 하늘소로 이미지 쇄신을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