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미 고로시게(阿南惟茂) 주중 일본대사가 선양(瀋陽) 총영사관의 북한 주민 망명좌절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에 `탈북자를 쫓아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아나미 대사는 북한 주민 5명이 망명요청을 위해 선양 총영사관에 들여가려다 중국 경찰에 의해 실패한 사건이 일어나기 불과 4시간 전인 8일 오전 베이징(北京) 대사관의 전 직원들을 모아놓고 이같은 지시를 했다고 교도(共同)통신은 전하고 있다.

아나미 대사가 '북한 주민들을 수상한 사람들로 간주해 쫓아내라'고 지시한 이유는 한마디로 귀찮은 일은 싫다는 말로 요약된다. 인권이고 도덕이고 골치아픈 일은 싫다는 얘기이다.

특히 아나미 대사는 최근 베이징의 외국 공관에 잇따라 북한 주민들이 들어가 망명요청을 한 점을 직원들에게 상기시키며, 이런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 있는 일본 공관들의 사령탑인 주중 대사가 이런 말을 했다면, 선양 총영사관에 같은 취지의 지시가 전달됐음은 분명해 보인다.

결국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 외상 등 일본 정부관리들이 중국 경찰의 총영사관 진입문제만 물고늘어지고 있지만, 아나미 대사의 지시로 미뤄볼 때는 '일본측 동의하에 북한 주민들을 끌어냈다'는 중국측 반박에 훨씬 무게가 실린다.

심하게 말하면 아나미 대사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총영사관측이 사건 초기 북한 주민들을 내쫓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 경찰의 총영사관내 진입을 `묵인' 또는 `동의'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문제의 초점은 `북한 주민 문전박대' 지시가 아나미 대사 개인의 생각인지, 일본 정부차원의 정책과 원칙인지에 모아진다.

일본의 해외 공관들이 망명 희망자를 포함한 신원불명자는 절대로 관내로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관례로 이어져왔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이번 아나미 대사의 지시를 개인적인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이번 사건은 결론적으로 중국 경찰의 총영사관 진입은 곁가지이며, 일본 정부가 탈북자의 망명을 원천봉쇄하려는 내부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게 문제의 핵심으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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