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식량계획(WFP)은 최근 “외부의 추가 식량 지원이 없다면 북한은 1990년대 중반처럼 대규모 기아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의 식량난이 다시 뉴스의 초점이다. 북한을 돕는 문제는 정치적 논란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북한을 도와온 사람들은 300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한 민간 차원의 대북 지원은 수그러들 줄 모른다. 외국의 민간 단체들도 앞장서고 있다. 이들의 스토리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북한어린이들이 민간단체의 자원봉사자에게서 칫솔을 선물받고 담임교사로부터 칫솔질을 배우고 있다. /유진벨재단 제공

지난 4월 말, 인천항 1부두에서 ‘트레이드 포춘’호(號)가 북쪽으로 출항했다. 이 컨테이너 화물선은 매주 한번 인천~남포 구간을 오간다. 이날 선적된 10개 컨테이너에는 ‘한국이웃사랑회 대북 지원 젖소 100두’라는 플래카드가 붙어있었다.

‘한국이웃사랑회’(회장 이일하)는 지난 95년부터 대북지원사업을 시작한 민간단체다. 4만 명의 회원으로 작년 한해만 약 80억원을 지원했다. 이 단체의 이윤상(여·39) 기획실장은 “현재 북한의 4개 목장에서 우리가 보낸 젖소 498마리를 기르고 있다”라며 “젖소는 북한의 탁아소와 고아원 아이들에게 우유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틀 뒤 그녀는 수의사 등과 함께 평양을 다녀왔다. 젖소가 무사히 지정된 목장으로 분배됐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활동 초기에는 우리의 의도를 많이 의심했습니다. 그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지요. 하지만 북한에도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북한의 주부들도 이념이나 체제와 상관없이 우리와 똑 같이 자식 걱정, 살림 걱정을 나눕니다.”

현재 북한과의 창구를 갖고 북한주민을 돕는 국내의 민간단체는 20개. 민간의 대북 지원은 1995년부터 촉발됐다. 대홍수로 최악의 식량난을 맞은 북한 당국이 ‘큰물피해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전세계에 구호 요청을 해왔다. 당시 국제사회의 지원이 없으면 100만명의 주민이 굶어죽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지금껏 국내에서 북한주민 돕기에 동참해온 숫자는 300여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작년 한해 민간의 총 지원 액수는 844억원, 그 전해의 421억원보다 85%나 증가했다. 이를 위해 작년에 민간단체 관계자 384명이 북한을 다녀왔다. 지원 형태도 서서히 바뀌어가는 중이다. 초기에는 긴급구호 성격으로 식량지원이 주류를 이뤘지만 최근 들어 농자재·농기구·전문의약품·의료기기 등으로 다양해졌다.

한 민간단체의 관계자는 “정부 차원의 퍼주기식 북한 지원에 대해 국내의 중산층이 등을 돌린 까닭은 무엇보다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민간차원은 보다 적은 비용으로 북한 주민에게 직접 분배되고 또 북한 주민과의 접촉을 늘릴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한말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미국인 유진벨 목사의 이름을 딴 ‘유진벨재단’. 이 사무실에는 80여개 결핵병원 및 요양원이 점점이 표시된 북한 전역 지도가 걸려있다. 유진벨재단은 이 중 48개와 결연을 맺고 있다. 97년부터 북한 당국의 요청으로 결핵퇴치 사업을 벌여오고 있는 것이다. 후원자는 대부분 재미교포를 포함한 한국인들. 북한의 병원 한개를 맡아 지원하려면 매달 약 500만원이 든다.


◇간염예방주사를 맞고 있는 북한 어린이. /유진벨재단 제공

이 단체의 스티븐 린튼(52) 회장은 선교사 유진벨 목사의 4대째 외손(外孫)이다. 그는 50여 차례 북한을 방문한 그는 “인류애 차원에서 순수하게 북한 주민을 돕는 것”이라며 “그러나 필요한 양의 15% 이상은 지원하지 않고 나머지는 북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당면 과제는 여전히 식량 부족이다. 세계식량기구(WFP)의 발표에 따르면 북한의 작년 예상 곡물수확량은 354만t이며, 금년 예상 수요량은 501만t이다. 적어도 147만t이 부족하다.

북한에 국수공장 6개를 세운 ‘월드비전’(회장 오재식)은 매달 300t의 국수를 뽑아 인근지역의 어린이와 노약자 6만명에게 매일 한끼씩 제공하고 있다. 밀가루 원료는 두 달 단위로 중국에서 구입해 보낸다. 한 달에 한번 꼴로 북한을 방문해 국수공장의 정상적인 가동 여부를 체크하고 있다.

또 2000년에는 수경재배 방식의 씨감자 사업장을 평양농업과학원에 세웠다. 첫해 가을 씨감자 100만알을, 2001년에는 580만알을 생산했다. 북한사업간사인 이혜영씨는 “이번 사업이 성공하면 2년 안에 북한 전역에서 필요한 씨감자를 충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민족 서로 돕기 운동본부’(상임대표 강문규)는 이달 안에 평양에 농기계 수리센터를 완공할 예정이다. 운영주체는 ‘북한 농업과학원’이지만 부품은 이 단체에서 지원하게 된다.

이용선(44) 사무총장은 “농기계가 고장 날 경우 부품 부족으로 그대로 방치되는 게 북한의 현실”이라며 “식량지원 못지않게 북한 스스로 농업 생산력을 높일 수 있도록 농기계·종자·농자재 지원사업을 벌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민족복지재단’(이사장 장기천)은 작년에 평양어린이병원, 인민학교 집단구충 사업 등 약 118억원을 지원했다. 그 전 해에는 서울의대의 도움으로 평양의대에 어린이심장병센터를 짓는 첫 삽을 떴고, 현지에 급식빵 공장을 설립해 평양시내 15000명의 어린이들에게 빵을 나누어주고 있다.

‘수퍼옥수수’로 유명한 ‘국제옥수수재단’. 지난 98년 국내외 각종 옥수수 품종을 교배해 만든 2만1000가지의 시험 품종을 북한에 보내 25개 연구소에서 시험재배 해왔다. 여기서 가뭄과 병충해에 강하고 한 정보(3000평)당 수확량이 8~12t에 달하는 ‘수퍼 옥수수’ 종자를 최종 선택하게 된다. 이 재단을 이끌어온 김순권 박사는 “수퍼 옥수수 품종이 생산되면 현재 연 200만t의 옥수수 생산량이 400만t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웃사랑회의 홍보대사로 북한의 젖소목장에 들러 소를 돌보고 있는 탤런트 유인촌씨. /한국이웃사랑회 제공

이 단체의 최성숙 기획팀장은 “98년부터 한번 이상 회비를 낸 연인원이 40여만명”이라며 “실향민들 중에는 자신의 고향에 보내질 옥수수 씨앗 앞에서 기도를 하고 보내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평화의 숲’(이사장 강영훈)은 99년 봄부터 묘목, 종자, 농약, 임업장비, 산림용 비료 등을 북에 지원하고 있다. 조민성(35) 사무국장은 “나무를 지원해 주겠다고 하자 처음에는 북한도 생소해했다”라며 “그러나 북한도 산림 황폐화로 인한 피해를 인식하면서 많이 달라졌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10여회에 걸쳐 잣나무·낙엽송·포플러 묘목은 580만그루를 보냈다. 올해 안에 평양 근처에 양묘장 1곳을 만들 계획이다.

한 민간단체 관계자는 “한때 우리의 활동에 대해 의심하던 북한의 한 간부는 나중에 ‘구한말 알렌과 아펜젤러 같은 미국 선교사가 했던 것과 유사한 것이냐’라고 물어온 적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팀장=崔普植사회부차장대우 congchi@chosun.com
김인구 정치부기자
김미영 통한문제연구소 기자
韓在賢·安容均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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