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의원이 평양에서 환대를 받고 돌아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여러 가지 ‘약속’을 받았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만남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 전 주석의 2세간 대면이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남북 당국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박 의원이 나름대로 이걸 풀어보려고 노력한 점과 그 ‘성과’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박 의원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김 위원장과의 면담내용을 보면 남북관계 현안이 폭넓게 망라돼 있다. 그리고 박 의원이 제기한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 김 위원장은 흔쾌히 긍정적 답변을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남북간 교착상태에 빠진 일들에 대해 김 위원장이 왜 유독 박 의원에 대해서만은 그토록 시원시원하게 “좋다”고 한 의도가 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금강산댐 공동조사,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동해선철도 연결 등의 현안은 남북 당국 간에 합의됐거나 논란이 되고 있는 것들로 어디까지나 당국 간에 풀어갈 문제이지, ‘비공식’ 면담에서 ‘합의’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남한의 야당 정치인에게 아량을 베푸는 듯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이른바 ‘민족대단결’과 ‘광폭정치’를 대내외에 과시하면서, 박 의원의 남한 내 정치적 위상에까지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북한언론이 ‘유럽코리아’ 재단이라는 민간단체 이사 자격으로 방북한 박 의원을 굳이 ‘남조선 국회의원이며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으로 부른 것도 유념해 볼 대목이다.

남북 간에 다양한 접촉과 대화창구가 마련되는 것은 물론 마다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존의 당국간 대화채널과는 상관없이 따로 작동한다거나, 나아가 북한당국의 정치적 계산에 의해 조정되는 것이라면 그 점만은 깊이 헤아려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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