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화

고향을 떠나온 지 4년. 나는 양강도 혜산에서 여자고등중학교를 다녔다. 졸업반이 가까워지면 누구나 대학, 군대, 또는 직장 등으로 진로를 정하고 제각기 준비를 했다.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김책공대에 들어가는 학생도 나오고, 군에 입대에 군 간호사가 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다가 20대 중반이 되면 대부분 주부가 된다. 생활의 전사가 되는 것이다. 주부가 된 내 친구 중에는 남편과 함께 이악스러운 삶의 현장에 나타나기도 했다. 어린 시절 우리에게 젖줄기처럼 달콤했던 압록강이 바로 그곳이다.

구리, 아연, 코발트, 니켈, 납… 값이 나가는 금속을 구해 중국으로 밀수하는 것이 그녀의 직업인 셈이었다. 만삭이 된 배를 끌어안고도 장사에 나왔다. 그녀만이 아니었다. 아이를 등에 업고 그 속에 금속을 감추거나, 빨래함지에다 금속을 넣고 빨랫감으로 위장하는 아낙네들도 있었다. 아내를 앞세운 남편들은 그 뒤를 멀찍이서 따라가며 망을 봐준다. 빨래를 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을라치면 중국쪽에서 미리 약속된 사람이 고무튜브를 타고 강의 절반쯤 건너온다. 얼른 함지에서 잘 포장한 금속을 던져준다. 품명과 무게, 자신의 이름과 보낸 날짜를 그 속에 적어 넣어 보낸다.

만일 경비대원에게 이 광경을 들키면 중국사람은 바람이 일도록 빨리 팔을 휘저어 돌아간다. 경비대원은 빨래하는 아낙네에게 무엇을 보냈는지 물을 것이다. 이렇게 승강이를 하고 있는 사이에 다른 쪽에서 거래가 이루어진다. 경비대원은 종일 경황없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단속을 하다 보면 멍해진 듯 보인다. 그런 며칠 후 중국쪽에서 금속을 판 돈을 보내온다. 물건을 보낼 때보다 대금을 받을 때가 훨씬 어렵다. 비닐주머니에 돈을 넣고 돌과 함께 고무줄로 동여맨 다음 중국측에서 던져주는데 이 때 잘못 받아 물에 빠지면 정말 낭패다. 경비대원들이 건져 제 주머니에 넣어 버리면 그만이다. 본전도 못 건진 아낙네가 아우성을 친다.

강이 얼어야 일이 쉬워진다. 빨래가 아니라 물을 길으러 가는 모양으로 강에 나간다. 강이 얼면 강폭은 1~2m로 줄어들게 되므로 겨울은 한 몫 벌 수 있는 계절이다. 강이 얼면 중국쪽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거래할 수 있다. 물동이에 금속을 담아서 건너편 얼음판에 던져준다. 더 꽁꽁 얼면 숫제 한가운데 얼음구멍을 뚫어 북한사람 중국사람이 빙 둘러 물긷는 듯이 하다가 서로의 물동이를 바꾼다. 나중에는 아예 경비대원을 매수해 수월히 하기도 한다.

이 장사로 내 친구는 집도 사고 근사한 세간도 잔뜩 들여 놓았다. 경비대에 붙잡혀 본전도 못 건지는 사람도 적지 않은데 그녀의 재간은 대단했다. 얼굴은 검게 그을고 손은 거칠대로 거친 이제 20대 중반의 아낙네. 그들에게도 한 때 꿈이 있었는데… 생존의 수레바퀴 밑에 깔린 그 얼굴들이 그리워 요즘에도 꿈에 밟히곤 한다.

/전 혜산철도관리국 예술선전대원·2000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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