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양(瀋陽)의 일본 총영사관에 진입하려다가 중국 무장경찰에 체포된 장길수군 친척 5명 사건을 통해, 일본은 기본적으로 자기네 해외 공관에서 탈북자를 받아들일 자세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본은 13일에도 ‘중국측에 탈북자 연행을 동의해준 일이 없다’고 발표했지만, 동의 여부와 관계 없이 일본은 탈북자를 적극 보호하려는 의지가 애초부터 없었다는 것이다.

길수군 가족의 탈북 실패 과정을 찍은 비디오가 없었다면, 일본측은 사건을 유야무야 넘겼을 가능성도 크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도쿄신문은 13일 선양의 외교관계자 말을 인용, “망명 희망자를 포함한 신원불명자는 일절 영사관 안으로 들여놓지 않는다는 것이 세계 각지에 있는 일본 공관의 방침이었다”고 폭로했다.

일본측 총영사관 직원이 중국 경찰이 울부짖는 여성을 끌고 나가는데도 수수방관만 하고 있었고, 오히려 모자까지 집어주는 ‘친절’을 베푼 것도 결국은 영사관원들이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신문의 주장이다.

또 일본은 기본적으로 제3국인의 망명 자체를 받아들여주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마이니치 신문은 일본 외무성 조약국 법규과 관계자 말을 인용, “일본에는 망명이나 난민인정의 절차를 규정한 출입국·난민인정법이 있으나, 이 대상자는 일본내 외국인에 한정되기 때문에 외국인이 재외공관에 망명을 신청할 경우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망명 신청이 있더라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판단한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설령 길수군 가족이 공관진입에 완전히 성공했더라도 받아들여졌을지 여부가 의심된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작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정권 반대운동을 하다가 탈출, 나리타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한 모하마드 자와드씨의 경우 파키스탄 신문과의 인터뷰 내용 등 수많은 ‘난민 증거’를 댔음에도 불구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송환지로 하는 강제퇴거 명령’을 받았다. 결국 강제송환되기 전에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몰락하기는 했지만, 망명 희망자를 사지(死地)로 돌려보내려 했던 셈이다.

유엔난민담당관실(UNHCR)의 자료에 따르면 2000년도의 난민 신청자 수가 독일 12만명, 미국 9만명, 영국 7만6000명, 프랑스 4만명에 달하는 데 비해 일본은 216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청자가 난민으로 인정되는 비율도 대부분의 나라가 30%를 넘기는 데 비해 일본은 14%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한 TV방송은 길수군 가족 망명실패 사실을 분석하며 “그동안 일본정부의 망명자 처리를 볼 때 이 경우도 ‘비디오 테이프’라는 증거가 없었다면 어물쩡 중국이 영사관 밖에서 연행한 것으로 처리하고 넘어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특히 일본 정부는 올 들어 탈북자들의 대사관 진입사건이 빈발하자 중국내 공관들에게 ‘주의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이 지시 내용이 ‘탈북자들의 인권을 존중하라’는 내용이지는 않았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일본의 언론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본의 망명정책에 대해 따가운 질책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사히 신문은 “일본 대사관과 영사관은 망명을 신청하는 사람을 ‘귀찮은 존재’로 보고 있기 때문에 영사관원들의 대처도 애매했던 것”이라며 “세계 주요국 가운데 정치적 망명을 기본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나라가 일본 이외에 어디 있는가”라고 질타했다.
/ 東京=崔洽특파원 po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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