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200여 이산가족들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비전향장기수들의 북한 송환날짜가 발표됐다. 이 문제는 이미 지난 6월 말 남북 적십자 회담에서 합의됐던 문제였다. 예정된 수순을 밟고 있는 셈이다.

비전향장기수들은 ‘고집스러운 빨갱이’란 손가락질을 받아가면서도 수십년간 옥살이도 마다않고 살아오다 이제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 범주에 포함돼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내부에 이들의 일방적 송환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이산가족 상봉이 있던 지난 16일 워커힐 호텔에서 납북자 가족모임들은 “월북자 가족도 만나는데 납북자 가족은 왜 못만나느냐”면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하물며 자기 발로 내려왔다가 붙잡힌 비전향장기수도 돌려주면서,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끌려간 사람들은 왜 못데려오느냐는 것이다.

휴전 이후 북한으로 납치된 사람은 모두 3756명. 이 중 454명이 현재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억류돼 있는 것으로 정부는 추정한다. 또 탈북자 등에 의해 생존이 확인된 국군포로도 343명이나 된다.

김대중(김대중) 대통령은 작년 말 “비전향장기수 송환 문제는 공정한 대화로 해결하겠다”고 말해 납북자 문제와 함께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런데 불과 반년이 지나 정상회담과 면회소 설치에 대한 북측의 약속 만으로 납북자와의 연계를 풀고 비전향장기수만 돌려보내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의 가족과 야당은 정부가 이들의 송환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박재규(박재규) 통일부 장관은 “법적으로 국군포로는 없다”고 했다. 그러니 정부가 우리 국민들한테는 해결하겠다고 해놓고 실제 북한과 협상하는 자리에서는 전혀 거론조차 안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어떤 자리에서도 정부가 이 문제를 북한에 제기했다는 흔적을 찾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한 전문가는 “50년 전 죽은 자기 국민의 뼛조각 하나를 찾아내서 가져오기 위해 수백만달러를 쓰는 미국에 비하면 우리 정부는 아무 것도 안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또 최근 비전향장기수 송환 여론이 납북자와 국군포로 송환 여론에 비해 훨씬 더 거세다는 현실이 납북자와 국군포로 송환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과 맞물려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들도 이산가족 못지 않은 한(한)을 안고 살고 있음에도 말이다. 북한은 그동안 “북반부에는 국군포로나 우리 체제가 싫어 남으로 돌아가길 희망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해왔다.

/김인구기자 ginko@chso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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