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들은 물론, 온 겨레와 지구촌 사람들을 함께 울렸던 8·15 이산가족 상봉이 일단 막을 내렸다.

이번 행사는 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일련의 남북 대좌가 성취한 최대의 가시적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가족사의 한을 50여년 만에 풀어가는 장면들은 당연히 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북한 자체에 대한 인식과 평가에도 드라마틱한 충격이 보태졌다.

한때 불시착을 염려하던 나라의 국적기(국자기)가 김포공항에 의연하게 ‘연착륙’하는 모습, 남쪽을 방문한 북한 주민들의 갖춰진 행장(행장), 그리고 나름대로 푸짐했던 그들의 선물 보따리를 보면서 우리 사회는 ‘김정일 신드롬’에 이어 ‘북한 쇼크’를 연달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동안 뜨겁던 북한 돕기 운동이 6월 이후 소강상태라는 소식이다. 여기에 이번 8·15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일부 국민과 젊은이들 사이에 그동안의 대북 관련 정보와 교육에 “속았다”는 배신감이 크게 팽배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는 지금까지 “바보처럼 살았다”는 말인가? 그리고 이제부터가 과연 ‘북한 바로 알기’의 시작이란 말인가?

차라리 그것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은 짧은 만남을 뒤로 하며 기약 없는 생이별을 감수하는 이산가족들을 볼 때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인지상정(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진실로 확신하기엔 이번 8·15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또한 역부족으로 남았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또한 향후 빽빽하게 대기하고 있는 남북 접촉 일정에 대한 희망과 기대도 귀하고 값지다. 그리하여 종전의 북한폄하론, 북한불신론, 북한경계론은 결코 새로운 시대정신에 부합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여전히 높은 분단의 벽을 실감하고 지난(지난)한 통일 도정을 예감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임하는 북한의 입장에 획기적인 변화가 약했다. 오히려 정치적 준비와 계산이 짙게 배어나왔다. ‘성공한’ 월북자 가족을 중심으로 남한 방문단을 절묘하게 구성한 것은 목적 면에서 비전향 장기수 송환 요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는 9월과 10월에 이번과 유사한 이벤트가 있을 것이라는 최고 당국자의 발언도 사실상 이산가족 상봉의 양적 확대 및 제도화에 대한 소극적 입장을 암시하고 있다.

하기야 이를 북한의 의도적 악의(악의)로 해석하는 것은 속단일지 모른다. 남북 화해 및 교류가 아무리 진심이라고 하더라도 체제 보호는 본능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남한 거주 이산가족의 북한 방문 요구를 자신있게 전부 소화하기는 힘든 데다가 ‘안심하고’ 남쪽 친지 곁으로 내려보낼 수 있는 북한주민마저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라면, ‘고비용 저효율’의 현행 남북 이산가족 상봉 형식은 북한의 입장에서 최대한의 성의 표시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처럼 북한이 처하고 있는 상황을 애써 이해한다 하더라도, 바로 그 자체가 이산가족 재회를 포함한 남·북한의 현안들이 여전히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평양을 찾아간 우리 측 이산가족이 전하는 바와 같이 반세기 이상의 세월 동안 바뀌지 않은 것은 인정과 음식, 그리고 사투리 정도이며, 이념적으로 이질화되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북한은 현실적으로 엄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보다 심각한 문제는 남북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는 마당에 북한을 자꾸만 ‘신드롬’과 ‘쇼크’로 경험하는 우리쪽의 경향이다. 당연히 변하는 측면도 있고, 변하지 않는 부분도 있는 하나의 북한을 우리만 공연히 마치 두 개인 양 왈가왈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당면한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은 물론, 궁극적인 통일의 완수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보다 냉정한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 전 상 인 한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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