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이 땅바닥에 쓰러진 채 사력을 다해 철문을 움켜잡고 있다. 경찰들은 그녀를 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이다. 이 여인에게 철문의 안쪽은 자유와 생명이며, 바깥은 죽음이다. 자유를 부여잡은 나약한 손은 뒷덜미를 당기는 거대한 공권력에 힘없이 풀어진다.

중국 선양(瀋陽)의 일본 총영사관 입구와 구내에서 중국공안에 끌려간 탈북자들의 신병처리가 한ㆍ중ㆍ일의 외교문제로 등장했다. 탈북자 문제가 본격적인 국제문제화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외국공관 진입에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가 탈북자들의 운명을 가르는 절대기준이 돼서는 결코 안된다고 본다. 탈북자 문제는 정치ㆍ외교적 문제이기 앞서 인도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진입에 실패한 사람들이 북한으로 송환될 경우 가혹한 탄압이 기다리고 있는 만큼 이들은 국제법상 엄연한 난민이며, 이들에게야 말로 인도적 배려가 절실하다.

이제 외국공관은 탈북자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얻기 위한 마지막 비상탈출구로 여겨지고 있다. 중국공안의 엄중한 감시와 단속으로 한국행 통로가 봉쇄되고 북한으로의 강제송환 위험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탈북자들은 목숨을 걸고 외국공관으로 뛰어들고 있다. 이들의 엑소더스를 경비강화와 철조망이라는 강경책만으로 막아낼 수는 없다. 더구나 이번처럼 중국공안이 일본 총영사관 구내에까지 들어가 탈북자를 체포하는 일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으로 국제적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국제 인권단체들의 탈북자 지원활동이 갈수록 깊고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거듭 확인됐다. 이들의 의지와 중국정부의 대응이 대립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한국과 중국이 정부차원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본격적으로 찾아야 할 때다. 탈북자 문제를 하나하나의 사건으로 대응할 단계를 넘어선 지는 오래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